전문가들 중론 "대부분 사망했을 것"
이동걸씨 "선장·기관장 죽을 이유 없다" 생존 암시?
(부산·울산·자카르타·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텐유호가 실종된 지 20년이 되도록 신영주(1947년생) 선장과 박하준(1954년생) 기관장을 포함한 선원 14명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전·현직 해경 수사관과 한국해기사협회 소속 선장, 항해사, 기관장, 해운업자, 해적신고센터 등 국내외 해사 문제 전문가들을 만나 텐유호 선원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전문가 다수는 지난 20년간 실종 선원과 관련된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점 등을 들어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이동걸(1947년생)씨는 지인들에게 "선장과 기관장이 죽을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생존 가능성을 살짝 흘렸으나 구체적인 정보 제공을 꺼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9년 장물취득 및 증거인멸 교사 등으로 기소돼 그 해 인천지법에서 열린 1·2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이듬해 3월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형이 확정돼 3년간 복역했다.
◇ 대부분 사망했을 가능성 커
전문가 다수는 선원 대부분이 해적들의 손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해경청 형사반장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김창권 전 경무관은 "선장이나 기관장 모두 의리를 중시하고 사관 정신이 투철했던 사람"이라며 해적들과 타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신 선장의 과거 직장(동방해운) 동료였던 김용수씨는 "선장, 기관장 두 분을 포함해 대부분이 희생되었을 것이고, 한두 명쯤 해적들이 살려두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씨는 "당시에도 해적이 약탈할 때에는 운항 기술이 있는 선원 출신들을 데리고 다니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적들이 굳이 기존 텐유호 선원들을 살려 둘 이유가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조해석 메타예선 대표는 전원이 숨졌을 것이라며 더욱 비관적인 추정을 내놓았다.
사건의 비밀을 감추려는 해적들이 텐유호 선원들을 단 한 명이라도 살려 뒀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조 대표는 설명했다. 1998년 12월 '산에이-1'호로 이름이 변조된 채 중국에서 발견된 텐유호의 선장실 문은 부서져 있었고 도끼에 찍힌 자국도 있었다.
중국 주방자오 외교부 대변인도 1998년 12월 31일 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전원 사망'이라는 추정을 밝힌 바 있다.
◇ "선원 일부 생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선원 중 일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없지는 않았다.
해경 수사관 출신의 해적 전문가인 조철제 전 경감은 텐유호 사건이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사건'(1996년 8월)과 유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선장, 기관장 등 일부만 살해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 전 경감은 "(시신을 수장해도) 웬만한 바다에는 시신이 뜨기 마련이지만 당시 말라카해협에서 시신이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수온이 높으면 부패가 빨리 진행돼 시신이 떠오르기 쉽다"고 설명했다.
텐유호가 실종된 10월은 말라카해협에서 우기(10∼3월)가 시작되는 때이며, 평균수온은 약 28도로 매우 높다.
한국해기사협회는 1998년 12월 31일 해경청에 보낸 진정서에서 선원들의 행방을 찾아 달라고 호소하며 "국제해사기구가 발표한 최근의 선박 탈취 사례를 보면 강도들이 선원들을 무인도에 버리거나 특정지역에 억류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수사정보과장 배진환 총경은 선박 내에서 선원들이 저항한 흔적이 없는 데다가 14인 전원을 한꺼번에 수장시키기도 어렵다른 점을 들어 전원 또는 대부분이 생존했을 수도 있다고 봤다.
해적들이 운항 일정이나 중요한 화물 하역 작업 등 전반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선장을 책임자로 끝까지 남겨 놓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장실 문이 파손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선장이 사망했으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권희 한국해기사협회장은 "여러 방면에서 냄새가 난다"라면서 전원 생존 가능성을 제기했다. 텐유호 사건이 선원들의 자작극일 수도 있다는 견해다.
그는 선장, 기관장, 선원송출업자 김태국, 주범으로 붙잡힌 이동걸 등 4인이 모두 부산해양고등학교 동문 사이이고 지인 관계라는 점을 들었다.
해적들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한밤중에 텐유호가 출항한 점도 의심스럽고, 해적들이 화물정보 없이 무작정 선박을 공격할 수 없는 만큼 내부 공모자가 있었을 공산이 크다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김창권 전 경무관은 '산에이-1'호라는 이름을 달고 중국 장자강에 입항했다가 억류됐던 텐유호가 1999년 일본 선주에게 반환되는 과정에서 울산항에 들어왔을 때 '실황조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타실 외에 선장 침실 내부에도 도끼 자국이 있는 것에 주목했다고 언급하면서, "사건을 수사하던 초기에는 선원 대부분이 사망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황조사에서 배 안팎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자작극 가능성도 동시에 염두에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흔적을 '선장이 문을 잠그고 안 열어 준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선원들이 배를 장악한 후 해적에게 당한 것처럼 위장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적들이 선박 강탈 후 선명 팻말도 용접해 바꾸고 페인트칠도 하면서 이런 도끼 자국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duckhw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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