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끝난 뒤 FA…두산 팬들은 "종신계약" 외쳐
"팬들의 격려라고 생각…기분 좋습니다"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올 시즌 내내 두산 베어스 응원석에서 "종신계약", "얼마면 되니"라는 문구가 보였다.
곧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 포수 양의지(31·두산)의 잔류를 원하는 팬들의 마음을 담았다.
온라인에서는 양의지를 놓고 '전쟁'도 펼쳐졌다.
두산 팬들은 "양의지를 넘보지 말라"고 하고, 다른 구단 팬들은 "우리 구단에 양의지가 필요하다. 리그 평준화를 위해 양의지를 우리 구단에 보내달라"고 호소한다.
26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만난 양의지는 "동갑내기 친구들(LG 트윈스 김현수, 롯데 자이언츠 민병헌)이 두산을 떠나서 더 그러시는 것 같다"며 "FA에 관한 팬들의 말씀은 모두 격려라고 생각한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라고 웃었다.
두산이 25일 잠실 넥센 히어로즈전 승리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해, 양의지의 표정은 더 밝아졌다.
그는 "25일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많이 긴장했다. 확실히 지금은 편안해졌다"며 "곧 한국시리즈 준비에 돌입하면 또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2018시즌 통합우승을 겨냥했다.
◇ "내 성적 나도 놀랍다…도루도 주목해주세요" = 양의지는 26일까지 타율 0.350, 21홈런, 72타점을 올렸다. 3개 부문 모두 10개 구단 포수 중 1위다.
도루 저지율도 0.400으로 압도적인 1위다. 볼 배합 등 인사이드 워크는 수치화하기 어렵지만, 10개 구단 관계자 모두 "양의지가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양의지는 "사실 올 시즌 내 성적에 나도 놀란다"고 씩 웃으며 "시즌 초에 우리 팀 타선이 조금 부진했는데, 그때 팀에 도움이 된 것 같아서 특히 기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올 시즌 양의지의 성적은 예전보다 좋다. 하지만 공·수를 겸비한 양의지가 '현역 최고 포수'로 평가받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이다.
양의지는 2015년 프리미어 12,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도 한국 대표팀 주전 포수로 뛰었다.
양의지는 국제대회 경험도 자산으로 만들었다. 그는 "2017년 WBC 대만전에서 오승환(콜로라도 로키스) 선배가 등판했을 때 '볼 배합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니 '그냥 몸쪽으로 던질게'라고 하시더니, 정말 강한 몸쪽 공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정우람(한화 이글스) 선배님을 보며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투수'라는 걸 확인했다"며 "이런 경험들이 내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 메이저리그도 양의지에겐 좋은 참고서다. 양의지는 "메이저리그 포수의 영상을 보며 도루 저지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송구 능력은 타고나지만, 포구 동작 등 기술은 훈련으로 나아질 수 있다. 여러 포수의 송구 동작을 보며 따라 해봤는데 도루 저지율이 올랐다"고 했다. 양의지의 지난해 도루 저지율은 0.321이었다. 올해 0.079나 올랐다.
또 다른 '양의지의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농담 섞인 답을 했다. 양의지는 "도루 한 개만 추가하면 개인 한 시즌 최다다. 도루 성공률로 확인해달라"고 말했다. 양의지는 6차례 도루를 시도해 모두 성공했다.
도루 6개 중 5개를 1점 차 혹은 동점에서 시도했고, 성공했다. 양의지는 "팀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야 한다"고 했다.
◇ "포수는 투수뿐 아니라 야수도 신경 써야 하는 자리" = 수비 때 모든 야수의 눈이 포수를 향한다. 투수의 공을 받는 게 포수의 주 임무지만, 더 똑똑한 포수는 야수의 마음도 헤아린다. 양의지가 그렇다.
양의지는 "일단 선취점을 내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경기 초반에는 신중한 볼 배합을 택한다. 경기에 돌입하기 전에, 우리 타선이 상대 투수에 뽑을 수 있는 점수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보고 볼 배합에 참고한다"며 "아무래도 포수 사인이 길어지면 야수들은 힘들다. 투수들에게는 유리할 수 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야수들이 서 있는 시간을 줄이는 볼 배합을 한다"고 말했다.
"야구는 '팀'으로 움직이는 종목이다. 균형을 맞춰야 투수와 야수가 모두 행복해진다"는 게 '포수' 양의지의 철학이다.
이런 양의지를 모두가 신뢰한다. 포수 출신 김태형 두산 감독은 "양의지가 안방을 지키면 경기 흐름이 달라진다"고 칭찬했다. 모든 투수가 "양의지의 사인대로 던졌다"고 말하고, 야수들도 "양의지만한 포수가 없다"고 감탄한다.
양의지는 "다들 좋게 말씀해주시는 것"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그의 조언 속에 부쩍 자란 젊은 투수들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양의지는 "박치국이 지난해까지는 바깥쪽 공만 던지려고 했다. 치국이에게 '바깥쪽 공에 타자들이 익숙해지면 쉽게 공략한다'고 조언했다. 올해는 과감하게 몸쪽 승부를 한다"고 흐뭇해했다.
양의지는 경기 중에도 투수들에게 "네가 자신 있는 공을 가장 자신 있는 코스로 던져. 후회 남지 않게"라고 말한다.
◇ "2016년 KS MVP, 2017년의 실수…모두 잊었다" = 2016년 양의지는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그러나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는 2차전 협살 상황에서 실책을 범하는 등 크게 부진했고, 두산은 KIA 타이거즈에 우승 트로피를 내줬다.
2018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두산은 올해도 한국시리즈에 나선다.
일단 양의지는 '무념무상'으로 한국시리즈를 준비한다.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좋았던 때도 있고, 실망스러운 경기를 할 때도 있었다"며 "나는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 빨리 잊으려고 한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을 계속 떠올렸다면 올해 정규시즌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의지는 2017년 가을 악몽을 떨쳐내고자 자주 웃었다. 그는 "경기를 시작하면 모두 포수의 얼굴을 본다. 찡그리는 것보다 밝게 웃는 게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물론 지는 날에는 웃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두산은 자주 이겼고, 양의지도 자주 웃었다. 두산이 높은 승률을 올린 건, 양의지의 미소 덕이기도 하다.
양의지는 "야구가 끝나는 날 웃는 게 가장 좋더라"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열망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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