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각본대로 한 것"…이치로 9타수 1안타 1볼넷으로 꽁꽁 묶어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이제 마운드를 떠나는 LG 트윈스의 왼손 투수 봉중근(38)은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봉의사'라는 애칭을 얻었다.
일본전에서 완벽에 가까운 호투를 펼쳤을 뿐만 아니라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스즈키 이치로를 철저하게 제압한 것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9년 3월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1차 라운드 결승전이었다. 당시 한일 첫 대결에서 한국은 김광현(SK 와이번스)이 선발 등판하고도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봉중근은 일본과의 리턴매치에 선발로 나서서 5⅓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1-0 승리를 이끌어 '봉의사'라는 별명을 챙겼다.
2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봉중근은 그때 그 경기를 아직도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선발 등판을 자처한 봉중근은 승부의 첫 단추 격인 이치로의 기를 꺾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봉중근은 "이치로의 첫 타석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1회 첫 타자 이치로가 타석에 서자 도쿄돔을 가득 메운 일본 팬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래서 플래시를 빌미 삼아 심판에게 항의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포수가 박경완 SK 코치님이었는데, 사전에 미리 얘기해놓았다"며 "박 코치님이 사인을 내면 타임을 부르기로 했다. 어떤 것으로든 이치로를 괴롭히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봉중근은 사전 각본대로 이치로의 타석 때 관중석에서 카메라 셔터 세례가 이어지자 마운드에서 포수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야구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창하게 주심과 대화했다.
봉중근은 "주심이 미국 사람이었고, 그 정도 영어는 자신이 있었다"리며 "주심과 친해지고 싶었다. 주심도 인간인지라 친해지면 볼을 선언할 걸 스트라이크를 줄 수 있다. 그런 1%의 바람으로 주심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있는 영어 없는 영어 다했는데, 그게 통했던 것 같다"고 했다.
봉중근의 애교 섞인 청탁에 주심과의 대화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주심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경기는 술술 풀렸다.
봉중근은 일본전에서 호투를 이어갔고, 이치로와의 대결에서 제1회 WBC 대회까지 포함해 9타수 1안타 1볼넷으로 압도했다.
봉중근은 당시 WBC 대회를 돌아보며 "봉중근을 많은 사람에게 알린 기회였다. 특히 제2회 WBC 때는 류현진, 김광현 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음에도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은인 격인 대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봉중근은 자신을 설명하는 여러 별명 중에서 '봉의사'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야구를 하면서 제일 뿌듯한 별명이 아닌가 싶다. 한 직업을 30년 넘게 하기도 쉽지 않다. 빨리 은퇴할 수도 있는데, 대한민국 팬들이 지어주신 별명이라 대대로 자랑할 수 있는 별명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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