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北대사관, 시진핑·트럼프 빼고 문재인·김정은 사진 도배

입력 2018-09-30 10:45   수정 2018-09-30 15:17

주중 北대사관, 시진핑·트럼프 빼고 문재인·김정은 사진 도배
유엔 총회 北리용호 연설 앞두고 전격 게시…평양 공동선언 의미 강조한듯
게시판에 첫 '태극기' 등장…시진핑 등 중국 지도부 사진 사라져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을 앞두고 주중 북한대사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철거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 사진으로 외부 게시판을 도배해 주목을 받고 있다.
주중 북한대사관 게시판은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유일한 공개의 장으로 남북한 지도자 사진만으로 게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0일 오전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 북한대사관 정문 바로 옆의 대형 게시판에는 지난 6월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내걸렸던 남북, 북중, 북미 정상회담 사진이 사라지고 지난 18~20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 관련 사진들로 전격 교체돼 있었다.
총 25장으로 구성된 이 사진은 2박 3일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문 대통령의 평양 순안공항 도착 후 공식 환영 행사와 카퍼레이드, 남북 정상의 만남 그리고 평양 공동선언 문서를 들고 양국 정상이 활짝 웃는 모습, 양국 정상 내외의 공연 관람과 식사 모습까지 빼곡히 담아 게시판에 내걸었다.
특히, 백두산 천지로 남북 정상 내외가 케이블카를 함께 타고 가는 모습과 천지 앞에서 기념 촬영 그리고 남북 정상이 한반도 깃발을 배경으로 두 손을 맞잡는 장면도 고스란히 게시판을 통해 소개됐다.
주목할 점은 문 대통령의 전용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장면도 게시하면서 북한대사관 게시판에 처음으로 태극기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전용기의 꼬리 날개 부분에 선명한 '태극 마크'가 담긴 사진이 그대로 게시됐다.

아울러 게시판 하단에는 미사일 등의 군사력 과시 대신 북한의 번화한 거리와 건물, 물놀이장 등을 소개하며 경제 건설에 집중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백두산 천지 사진도 실어 북한이 백두산 관광에 공을 기울이고 있음도 보여줬다.
주중 북한대사관의 게시판의 사진은 북한 정권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바꾼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엔 총회 기간에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을 뺀 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으로만 꽉 채운 것은 다분히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는 북한이 평양 남북 공동선언의 이행에 대해 그만큼 중시하고 있으며 미국도 성의를 보여 종전 선언 및 대북 제재 완화 등을 통해 북미간 핵 협상에 속도를 낼 수 있길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주중 북한 대사관은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남북, 북중과 함께 북미 정상이 악수하는 사진을 게시판에 내걸며 북미 관계 개선에 강한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또한, 이번 게시판 사진은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북미 핵 협상의 중요한 중재자로 여기고 있음을 대내외에 보여주면서 북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중국에 대한 불만도 토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동안 주중 북한대사관 게시판은 올해 세 차례나 만난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회동 사진이 메인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것은 중국도 북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중국은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인 9·9절에 중국 지도부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이 방북하고 왕양(汪洋) 상무위원이 북한 대사관까지 방문했지만 게시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베이징 소식통은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주중 북한 대사관 게시판에서 사라지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만으로 채워진 것은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 협상의 난관을 타개하겠다는 의중이 들어있다"면서 "아울러 북미 협상의 중재자로 나선 문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게시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광명성 4호 위성'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수중 시험 발사 등 각종 무기 사진이 도배돼 북한의 무력을 뽐내왔으나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북미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자 지난 4월 말 북중 정상회담 사진으로 바꾼 바 있다.
president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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