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경과 '반품·폐기' 줄이고 물류 효율화로 co₂감축에도 기여
소비자도 '기한 연장 아닌 앞당기기' 환영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유통기한 경과로 폐기되는 식품을 줄이기 위해 유통기한 표시방법을 바꾸는 움직임이 일본 식품업계에 확산하고 있다. 일본 유력 음료업체인 산토리식품 인터내셔날은 과즙을 사용하지 않은 청량음료를 중심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는 유통기한인 '쇼미기겐(賞味期限)'을 기존 '연월일(몇년 몇월 몇일)'표시에서 '연월(몇년 몇월)'표시로 순차적으로 바꾸고 있다. 올해 말까지 전 제품의 90%까지 유통기한 표시를 '연월'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유통기한이 '2019년 5월1일'인 제품과 '2019년 5월31일'인 제품은 모두 '2019년 4월'로 표시한다. 유통기한을 최장 1개월 단축하는 셈이지만 상품 도착이 늦어져 유통기한이 하루만 지나도 반품하거나 폐기처분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 회사 홍보실 관계자는 제품 소매점의 입장에서도 매일 남은 유통기한 순서에 맞춰 상품을 다시 진열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기린음료는 유통기한 표시방법 변경을 통해 연간 250t 정도의 식품 폐기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유통기한 표시방법 변경은 물류 효율화에도 도움이 된다. 유통기한이 하루라도 많이 남아있는 상품을 확보하기 위해 히가시니혼(東日本)과 니시니혼(西日本)을 넘나들며 상품을 운반해온 물류업계도 유통기한에 신경을 덜 쓰게 돼 불필요한 수송을 줄일 수 있어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연간 약 170t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슈퍼에서는 고객이 진열된 식품의 쇼미기겐을 비교해 하루라도 더 남아있는 제품을 고르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도쿄도(東京都)내의 한 슈퍼 진열대에서 소시지를 고르던 한 여성(72)은 유통기한이 한달 정도 남아있는 제품을 비교하다 주저하지 않고 기한이 3일 더 긴 안쪽에 진열된 제품을 골랐다. 이 여성은 "노인 둘이서 사는데 금세 다 먹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유통기한이 긴 제품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쇼미기겐은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로 보관했을 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간으로 기한이 경과하더라도 금세 먹지 못하게 되는건 아니지만 소비자들은 이 표시에 무척 민감하다. 일본 식품메이커와 소매점 사이에는 이른바 '3분의 1 규정'이라는 관습이 존재한다.
예컨대 유통기한이 6개월인 상품의 경우 도매업자가 제조일로부터 계산해 쇼미기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개월 이내에 슈퍼 등의 소매점에 납품해야 한다. 납품이 2개월보다 늦어진 상품은 가게에 진열하지 못하며 도매업자가 메이커에 반품하거나 폐기 처분한다. 메이커 측에 따르면 반품된 제품은 '판매장려금'을 주는 조건으로 다른 소매점에 판매하거나 할인상품점에 내다 판다.
이런 방법으로도 소화하지 못한 상품은 "사원식당에 쌓아 놓고 '마음대로 가져가라'는 쪽지를 붙여 놓기도 한다"고 한다. 유통기한의 3분의 1을 경과했을 뿐이지만 상품 가치는 크게 떨어지게 된다.
이런 규정은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이 가게에 진열되는 걸 막기 위해 1990년대에 시작됐다. 메이커와 소매점, 소비자가 각각 유통기한의 '3분의 1'씩을 나눈다는 생각에서 생겨나 정착했다. 미국과 유럽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지만 미국은 '2분의 1', 유럽은 '3분의 2'가 일반적이어서 일본이 특히 짧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유통경제연구소는 도매업자가 메이커에 반품한 가공식품은 2017년에 562억 엔(약 5천62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반품된 상품의 20% 정도는 할인점 등에서 소화했지만 80%는 폐기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식품메이커와 소매점 등 35개사가 참가한 실증실험에서 '3분의 1' 규정을 '2분의 1'로 완화하면 연간 약 4만t(약 870억 원분)의 폐기를 줄일 수 있다. 이 연구소의 이시카와 도모히로 주임연구원은 "사업자에 의한 식품 로스의 1% 이상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대상품목을 확대하면 식품낭비 감축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던 한 여성 고객(65)도 "유통기한에 신경이 쓰이지만 기한을 연장하는게 아니라 현재보다 단축하는 거라면 좋지 않겠느냐"며 표시방법 변경을 환영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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