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中 '빚의 덫' 피하려 사우디와 급밀착

입력 2018-10-01 16:55  

파키스탄, 中 '빚의 덫' 피하려 사우디와 급밀착
정유공장·구리광산 투자 협의…사우디는 이란 견제 모색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파키스탄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빚 수렁에 더 깊이 빠지는 것을 피하려 대(對) 사우디 아라비아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사우디 고위 관리들이 1일부터 파키스탄에 도착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정유공장 개발 등 투자에 대한 협의를 벌인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측 관계자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파키스탄내 정유시설 투자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확인했다. 양측은 페르시아만 초입 호르무즈해협의 전략적 요충지인 과다르항에 하루 20만배럴의 석유를 정제할 정유공장 건설을 협의 중이다.
방문자 중에는 아람코 회장이기도 한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도 포함돼 있다. 칼리드 장관은 굴람 사와르 칸 파키스탄 석유부 장관과 회동이 예정돼 있다.
사우디는 또 파키스탄 북서부 발루치스탄주의 레코 디크 구리광산 개발을 포함한 프로젝트 투자 협상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칠레와 캐나다 업체가 합작 개발을 했던 이 구리광산 사업은 파키스탄 당국의 라이선스 거부로 7년째 동결돼 있는 상태다.
파키스탄과 사우디의 최근 밀착은 중국 일대일로 사업 참가에 따른 부채 위기와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파키스탄은 중국 일대일로 인프라개발 사업의 핵심 파트너로 총 620억 달러가 투입되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중 중국이 40년간의 항만 운영권을 확보한 과다르항은 가장 주목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사업 추진과정에서 파키스탄의 부채 부담이 커지며 현재 개발 사업도 지지부진해진 상태다.
파키스탄은 앞서 과다르항 정유공장 건설을 위해 중국을 쳐다본 적이 있었다. 파키스탄 에너지 당국도 지난 몇달 사이 중국과 이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경우 중국에 더 많은 빚을 져야 한다는 점이 덜미를 잡았다. 때마침 사우디는 정유시설 투자를 예정해놓고 있었고 미국이 일대일로 참여국에 '빚의 덫' 경고를 하던 참이었다.
사우디의 이번 투자는 CPEC 사업의 돌파구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재정난 우려와 사업 재검토 분위기 속에 CPEC가 중단될 수도 있었지만 파키스탄 새 정부는 CPEC 사업에 더 많은 국가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지난달초 파키스탄을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CPEC의 무게중심을 산업협력 쪽으로 옮기기로 파키스탄과 합의했다"며 사업의 개방성을 강조한 바 있다. 파키스탄 정부의 한 각료도 사우디가 CPEC 사업에 참여하는 제3국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과다르항 정유시설에서 정제된 석유는 해외 수출하거나 파키스탄 국내에서 판매될 수 있으며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로 이어지는 이르는 새로운 도로를 따라 중국에 수송될 수도 있다.
파키스탄과 사우디의 접근은 중동 내부의 역학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우디는 칸 정부 출범후 지난 8월말 파키스탄을 방문한 외국의 첫 고위당국자가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었던 것에 주목해 파키스탄에 대한 외교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 정부의 초청으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달 중순 이슬람 성지 메디나를 방문해 살만 국왕 및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잇따라 만났다. 이번 사우디 관리들의 방문은 빈 살만 왕세자의 파키스탄 답방을 사전 준비하기 위한 목적도 갖고 있다.
파키스탄은 사우디와 전통적 우방이었지만 최근 수년간 이란과 사우디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펴다가 사우디와 관계가 소원해졌던 사이였다.
아울러 사우디로선 이들 투자사업을 통해 모두 파키스탄과 관계를 심화시키는 한편 경쟁국 이란을 겨냥한 전초기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란과 접경에서 110㎞ 떨어진 과다르항 정유공장은 이란 차바하르항의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사우디 정유시설은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파키스탄에 석유를 판매하는 이란의 의도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 이란은 그간 국제사회 제재를 받을 경우 이웃 국가들에 대한 석유 판매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현재 경제난과 재정위기에 봉착한 파키스탄 역시 이번 사우디 측과 협의를 통해 사우디로부터 석유를 더 싸게 구매하거나 대금 지급을 늦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근래 사우디에 수천 명의 군인을 파견해 훈련을 벌이기도 했으나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 동맹군이 후티 반군과 싸우고 있는 예멘 내전에 참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리파크 후세인 이슬라마바드 국립 과기대 교수는 "파키스탄은 이란과 사우디 사이에서 관계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며 "파키스탄은 CPEC에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일 한 수단으로 사우디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jo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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