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고립 광폭외교 눈길…'정상국가' 달라진 위상 반영
유엔연설 이외엔 묵묵부답…'폼페이오 방북·빈 실무협상' 주목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총회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6박 7일 동안 리 외무상이 보여준 외교행보에는 미국과 진행 중인 비핵화 협상과 맞물려 외교 고립에서 벗어나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 외무상은 이날 오후 5시께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중국 베이징행 에어차이나 'CA982' 편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 뉴욕 도착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측의 '특급 의전'을 받으며 계류장에서 곧바로 비행기로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 방문 마지막 날을 맞아 인근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사무실을 찾는 것을 제외하면 별도의 일정을 잡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전 내내 숙소인 유엔본부 앞 밀레니엄 힐튼 유엔플라자 호텔에 머물다, 오후 3시 30분께 미국 측 경호를 받으며 호텔을 빠져나갔다.
리 외무상은 뉴욕 체류 기간 1년 전과는 180도 달라진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핵·미사일 프로그램 강행으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다면 이번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일절 침묵을 지키면서도 유엔 무대에서는 '광폭 행보'를 과시했다.
지난달 2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양자회담을 비롯해 중국·러시아·일본까지 한반도 주변 4강의 외교수장을 모두 만났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헨리에타 포어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총재 등 국제기구 수장들과도 두루 면담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표부가 모여 있는 '우간다 하우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다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남북 외교수장 회동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리용호 외무상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러시아·스위스·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베네수엘라·코트디부아르·알제리·쿠바·부룬디·노르웨이·브라질의 외무수장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그밖에 적도기니·모리타니·몽골·오만 측과도 접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이러한 활발한 외교행보는 한반도 외교국면과 맞물려 북한의 넓어진 '외교 공간'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북미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으로도 읽힌다.
지난달 29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선의의 조치'들을 한껏 부각하면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압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리 외무상은 기조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면서 "비핵화를 실현하는 우리 공화국 의지는 확고부동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종전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면서 "조선반도 비핵화도 신뢰조성을 앞세우는데 기본을 두고 평화체제 구축과 동시 행동 원칙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동시행동·단계적 실현 원칙을 주장했다.
1년 전 기조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겨냥해 '투전꾼', '과대망상', '악(惡)통령', '정신이상자'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부은 것과는 달리, 조만간 본격화할 협상 국면을 겨냥한 전략적 발언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일단 리 외무상이 뉴욕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그동안 유엔총회에 쏠렸던 시선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오스트리아 빈 실무협상 등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온 가운데 리 외무상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상응 조치를 요구하며 미국으로 공을 넘기면서 북미 간 수 싸움은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이날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과 비건 특별대표의 협상 계획과 관련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지금은 발표할 출장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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