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독재자의 정치적인 삶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사적인 삶과 욕망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삶'이라는 제목을 처음부터 정해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다산북스) 작가 전혜정(43)은 2일 소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집필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완전한 악인도 완전히 선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독재자 리아민은 사적으로 보면 분명 매력적인 사람이고 비정상적으로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작중 화자인 박상호가 마음이 흔들리죠.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면 독재자이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인물입니다.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일종의 혼란을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 '리아민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라고 말이죠. 인간의 복잡한 심리에 대해 독자들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 장편소설은 장기 집권하는 대통령 '리아민'의 요청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인 '박상호'가 불려가 리아민 이야기를 듣고, 사실과 거짓이 뒤섞인 그의 말을 어떻게 '전기'로 재구성할지 고뇌하는 과정을 큰 줄거리로 한다.
리아민 이야기에서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외할머니 손에 길러졌으나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대범함을 보여준 아이로, 청년 시절에는 불꽃 같은 첫사랑에 빠졌다가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정략결혼을 택하는 냉혈한으로, 결혼 이후에는 다시 아내에게 순정을 바친 따뜻한 남편으로, 권력자인 장인에게 받은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청렴한 정치인 등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에게 아버지가 부재했기에 자신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포기했으며, 그 대신 "이 나라 국민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열망했다는 고전적인 수사를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독재자 리아민 캐릭터에 실존 정치인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에 작가는 "특정 정치인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독재자에 대해 지닌 관념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캐릭터"라고 답했다. 또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에도 여러 독재자가 있었다. 소설가는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영향받아 쓰는데, 몇 해 전부터 독재자를 소재로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구상해왔다"고 집필 배경을 덧붙였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독재자 전기를 쓰려 하는 작가 박상호 이야기다. 소설 화자로 등장하는 그는 대통령 전기 출간을 발판으로 작가로서 명성을 단단하게 다지려 한다. 그러나 리아민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가식과 상투성에 싫증을 느껴 집필 욕구가 사그라들기도 한다.
"독재자의 '다른 삶'을 다루려면 그의 구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듣는 사람을 작가로 설정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 박상호의 출세 욕망을 대비시키면 서로의 욕망으로 시너지 효과가 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 작품을 혼불문학상 공모에 내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어렵게 쓴 장편이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독자에게 더 가까이 갈 기회를 얻어 감사했다. 최명희 작가를 기리는 문학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에도 큰 기쁨을 느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07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 '해협의 빛'이 당선돼 등단했지만, 10년 동안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이 단편을 담은 소설집이 유일했다. 그는 그동안 계속 장편소설 쓰기를 연습했다. 그런 노력 끝에 어렵게 내놓은 첫 장편이 올해 상반기 출간한 '첫번째 날'이다. 이어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쓴 장편이 이번 소설이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그에게는 특히 "절실"했다고 한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느라 소설 쓸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등단하고 나서 제가 어느 정도는 필력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등단도 10년간 연습을 하고 됐거든요. 그쯤이면 장편을 쓸 필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잘 안 써지더라고요. 써도 수준이 좋지 않았어요. 그중에 한 편 건진 것이 올해 상반기에 출간한 '첫 번째 날'이고, 두 번째 장편이 '독재자…'예요. 나머지는 추후 수정한 뒤 출간하거나 더 좋은 장편의 밑거름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힘든 점은 많았지만, 포기는 안 되더라"고 했다.
"장편을 쓸 때 즐거워요. 단편은 인생을 조망하기보다는 예리한 칼날로 자르듯이 부분적인 삶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장편은 일생을 태어나서부터 끝까지 다루며 한 인물을 낱낱이 파헤치는 매력이 있어요. 이 시대에 전업 작가로 사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쓴 것처럼 앞으로도 집필 활동을 계속해 나가며 행복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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