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핵시설 폐쇄-종선선언 빅딜 강조…"대단히 큰 도약될 것"
WP "트럼프, 종전선언에 열려 있어…존 볼턴 등 매파는 여전히 회의적"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비핵화 협상 진전을 위해 북한에 대한 '핵무기 목록 신고 요구'를 일단 미루고, 북핵시설의 '검증된 폐쇄'를 받아들일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강 장관은 주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WP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면 이후 검증을 놓고 이어질 논쟁에서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WP가 전했다.
강 장관의 이 같은 언급은 비핵화 협상의 진전과 북미간 신뢰구축 차원에서 미국도 전향적 입장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거듭 강조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WP에 따르면 강 장관은 지난 2008년 조지 W.부시 정권 시절 북한이 플루토늄 관련 시설에 대한 수천 페이지의 자료를 넘기고 난 뒤 협상이 오히려 악화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강 장관은 "핵 목록 신고를 받은 뒤 그걸 검증할 상세한 프로토콜을 산출해내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했다"며 "우리는 다른 접근을 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어느 시점에서는 북한의 핵 목록을 봐야 한다"면서도 "양측에 충분한 신뢰를 줄 수 있는 행동과 상응 조치가 있어야 그 시점에 더 신속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강 장관은 또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을 놓고 북미가 서로 '빅딜'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강 장관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서 매우 큰 부분으로, 만약 미국이 종전선언과 같은 상응조치를 하는 대가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한다면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는 대단히 큰 도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목록 신고 및 검증을 미루자는 한국 정부의 제안은 비핵화 협상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감이 커지는 가운데 북미 간 협상 교착상태를 타개하고자 고안된 것이라고 WP는 설명했다.
WP는 "이 계획은 7일 방북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도 여러 옵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WP는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미국 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도 핵신고 요구를 잠시 접거나 종전선언을 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논평하지 않았으며,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행정부 내 매파는 북한과 중국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우려해 종전선언에 여전히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이같은 한국 정부의 제안에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고 WP는 전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만약 영변 핵시설 폐쇄가 첫 시작(firt bite of the apple)으로 확인된다면 그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겠지만 단지 그걸로 끝이라면 매우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연 신(新)미국안보센터(CNAS) 한국 담당 연구원은 "처음부터 포괄적이고 완전히 정확한 핵 리스트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 장관은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서가 될 것이라면서 미 정부 내의 우려를 일축했다고 WP는 보도했다.
WP는 대북 협상에 정통한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 서명에 열려 있는 입장이며, 특히 미군 주둔 비용 문제에 대한 그의 오랜 불만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철수 요구에 개의치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강 장관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비핵화 협상에서 '시간 싸움을 않겠다'고 한 것과 관련, 협상의 복잡성을 내포한 발언으로 이해한다면서 "매우 발전된 핵 프로그램이다. 짧은 기간 내에 그냥 해체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우리는 이 과정에서 어떤 당사자보다 북한을 더 잘 알고 있고 완전한 비핵화를 누구보다도 열렬히 원하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과 관련해 '순진하다'는 것은 우리 정부를 특징지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선 "북한 인권 상황은 세계적 문제이며 우리도 그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 문제를 제기할 때가 있을 것이다. 다만 분명히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비핵화 문제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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