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괴력난신' 이야기는 어떻게 기억되고 전승됐을까

입력 2018-10-04 18:00  

조선시대 '괴력난신' 이야기는 어떻게 기억되고 전승됐을까
선현들 기이한 존재·현상 기록…민초 애환과 피폐한 사회상 반영
국학진흥원 '선인들의 상상력' 주제 웹진 담 발간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조선시대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을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했을까"
한국국학진흥원이 '기이한 소문과 신기한 이야기-선인들 상상력'을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0월호를 펴냈다.
4일 웹진 담에 따르면 조선 시대 선현들의 수많은 기록에는 일식, 월식, 혜성과 같은 천문현상과 우박·천둥·번개, 가뭄·홍수 등 기상현상과 재난, 기이한 동식물의 등장과 행동 등 자연현상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선현들은 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 전설·괴담 주요 목록…구전·기록으로 전승돼 고전소설로 진화
?논어? 술이 편에는 "공자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은 이야기하지 않으셨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괴(怪)는 기괴한 일, 력(力)은 차력처럼 초인과 같은 힘, 난(亂)은 난세에 일어날 법한 막 나가는 현상, 신(神)은 초자연적 신비로운 일을 가리킨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하는 왕조국가로 모든 선비는 공자 가르침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공자 말대로라면 모든 선비와 백성은 괴력난신을 입에도 담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괴력난신은 버젓이 살아남아 전설이나 괴담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하거나 일부 기록으로 남았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고전소설의 주요 소재로 백성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면 전통시대 괴력난신은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했을까?
그 이야기에 담긴 경험과 상상력은 조선 시대 민초의 팍팍한 삶과 어두운 현실에 뿌리를 둔다.
여기에 조선 후기 선현들의 일기자료에 담긴 기이한 이야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흉흉하고 피폐한 사회상을 반영했다.
창작자들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환상의 세계를 그리고 현실에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물과 현상을 왜곡하거나 변형하기도 한다.



◇ 얼굴 여섯 물고기·땀 흘리는 탕평비…나라 흉흉해 이상한 징조 잇따라
임진왜란이 끝나고 8년이 지난 선조 39년(1606) 6월 20일 정경운은 '고대일록'에 황해도에서 얼굴이 여섯이며 길이가 10척쯤 되는 물고기가 잡혀 장계를 올렸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남긴다.
철종 3년(1852) 9월 28일 서찬규는 '임재일기'에 땀 흘리는 비석 이야기를 기록한다. 일주일 동안 비가 몹시 오고 춥다가 비가 그친 날, 성균관 사람들이 탕평비(蕩平碑) 앞으로 분주히 달려가 "비석이 땀을 흘린다"며 괴이하게 여겼다.
서찬규는 이를 최근 기후 때문에 생긴 과학 현상으로 다른 비석도 마찬가지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성균관 유생들이 영조의 탕평비가 땀을 흘린다고 여긴 데에는 극심한 세도정치로 기울어가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심은 천심으로 이 소식은 이튿날 장안에 널리 퍼졌다.
을사늑약이 있기 1년 전인 1904년 8월 박주대의 '저상일월'에는 의성 금성산 밑에서 용머리에 이리 몸을 하고 온몸에 털이 나 있는 아이가 태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부부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땅에 파묻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가 살아서 먼저 돌아와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으며 "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안동에 있으나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했다"고 했다.

◇ 괴력난신 이야기는 민초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힘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관료와 유생이 괴력난신을 하늘이 전하는 심상치 않은 시그널로 인식하며 사회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생활에 고통받는 백성은 현실의 고통을 잊고 이상 사회로 나가는 통로로 삼았다.
백성 사이에 널리 퍼진 이야기는 그들이 품고 있는 원한을 통쾌하게 풀어내는 한풀이 장이기도 했다.
어느 시대나 창작자는 당대 사회상을 꼬집거나 현실에는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을 이야기로 구체화해 많은 청중을 위로하거나 열광토록 했다.
현실 좌절과 미래 희망이 혼재한 '아기 장수' 이야기는 2017년에 인기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갑질 사또의 원한을 풀고자 하는 '처녀 귀신' 이야기도 2012년 20부작 드라마 '아랑사또전'으로 창작해 방송했다.
이처럼 선현들이 남긴 수많은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은 이 시대 창작콘텐츠로 탄생하는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국학진흥원은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 조선 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창작소재 4천270건을 구축해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10월호 필자로 참여한 공병훈 교수(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는 "전통 이야기 속 집단 무의식은 백성의 염원과 지향을 담고 있는 만큼 사회변화 폭이 큰 현대에 새로운 창작콘텐츠로 활발하게 다시 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kimh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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