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미국 정부가 캐나다, 멕시코와 체결한 새로운 무역협정을 본보기로 이용해 다른 나라들과 무역협상을 할 때 환율과 수출 쿼터, 노동 시장, 중국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자국의 이해를 관철하려 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북미 무역협정을 미국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모델"이라고 칭해, 협상에 대비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은 더는 무역협정을 자국 기업이 세계 공급망을 구축하게 하는 방법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미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제품의 기준을 강화해 미국에 제조업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은 교역국들이 지적 재산권 보호부터 높은 임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규정과 기준을 수용하는지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아직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개정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U.S.-Mexico-Canada Agreement)을 다른 교역국들에 적용하는 방법을 놓고 세밀한 전략을 짜고 있다.
다음의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최근 각각 미국과 새로운 무역협상을 시작한 일본과 유럽연합(EU)이다. 영국과 필리핀도 조만간 미국과 협상할 예정이다.
트럼프 정부가 USMCA의 조건을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가 24년간 의존한 나프타를 없애버리겠다고 위협해 협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은 미국과 이런 무역협정을 맺은 상태가 아니므로 잃을 것이 없다.
더욱이 내년에 EU-일본 무역협정과 미국이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나란히 발효되면 미국 수출업체들이 불리해진다.
캐나다, 멕시코 다음으로 미국에 자동차를 많이 수출하는 일본과 독일은 미국의 쿼터 요구에 대비하고 있다. 쿼터는 트럼프가 위협한 25% 관세를 피하는 대가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 벌칙을 피하려고 수출 상한선을 받아들였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캐나다와 멕시코는 연간 260만대에 대해 관세를 면제받는다.
이는 미국이 1980년대에 일본으로부터 "자발적인 수출 억제" 약속을 받아낸 것을 연상시킨다.
일본은 USMCA의 "환율 조작" 처벌 조항도 걱정한다. 무역협정에 이런 조항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일본이 수출업체를 지원하려고 외환시장을 왜곡한다고 자주 비난해왔다.
영국도 무역에서 복잡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EU에서 탈퇴하려는 영국은 미국, 중국 양쪽과 별개의 자유무역협정을 각각 체결할 계획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향후 협정에서 교역국이 "비시장경제국"과 별도의 협정을 맺으면 철회할 수 있는 조항을 넣으려 한다. 비시장경제국이란 중국을 뜻하는 것으로, 영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을 택하도록 강요받을 수 있다.
USMCA는 미국 무역협정의 전환점이다.
1994년의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외국에 투자하는 미국 기업들이 특별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런 보호가 아웃소싱과 글로벌 공급망을 촉진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는 오히려 방해된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북미협정에서 멕시코와 캐나다에 투자하는 미국 기업들에 대한 보호 조항은 약해지거나 없어졌다. 미국과 필리핀의 자유무역협정은 법률 제도가 예측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미국 기업이 특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환율 처벌과 수출 쿼터를 포함한 새 북미협정에서 논란거리인 환율 조작 등에 관한 조항은 향후 다른 나라들과의 협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환율 조작으로 비난받은 적이 없다. 이들 나라가 각각 받은 자동차 쿼터도 현 수출 물량보다 훨씬 많다.
이 때문에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런 조항에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트럼프 정부는 향후 협정에 적용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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