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탈인종성향 브라질서 이변…백인 상류층 반감 이용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좌파 성향의 탈인종 사회 이미지를 갖고 있던 브라질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극우 정치인의 대통령 당선이 한 발짝 가까와졌다.
브라질 극우 성향 사회자유당(PSL)의 자이르 보우소나루(63) 후보가 오는 7일 대통령 선거 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선두주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13명이 난립한 브라질 대선후보들에 대한 지지도 조사에서 보우소나루 후보는 31%의 지지율로 좌파 노동자당(PT) 페르난두 아다지 후보의 21%를 크게 앞섰다. 여론조사업체 다타폴랴가 4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보우소나루 후보 39%, 아다지 후보 25%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
브라질 선거 제도서는 당선을 위해서는 50% 이상의 득표가 필요하다. 후보 13명중 아무도 과반의 득표를 하지 못하면 2명의 최고 득표후보를 놓고 오는 28일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다.
현재의 여론조사대로라면 보우소나루, 아다지 후보간의 결선투표가 예상되는 셈이다. 여기에 아다지 후보는 부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 대선 출마가 좌절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어 결선투표 역시 보우소나루 후보의 우세가 예상되고 있다.
신문은 브라질 사회를 양분하고 있는 보우소나루 후보의 극우적 발언을 전하며 브라질이 안고 있는 고민의 한 단면을 소개했다.
그는 평소 경찰이 더 많은 범죄자들을 사살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으며 "동성애자 아들은 매질을 덜한 결과", "초등학교에서 동성애 문제를 논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번은 여성은 임신을 하는 까닭에 남성보다 임금을 덜 받아도 된다고 한 적 있었고 일부 소수민족을 지목해 '뚱뚱하고 게으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지지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보우소나루 후보 유세장은 브라질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동요하는 백인 남성들의 배출구가 됐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적폐청산 공약 구호처럼 '오물 청소를 하겠다'(drain the swamp)고 했고, 또 브라질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도 했다.
보우소나루 후보는 거친 발언과 독특한 대안 제시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도 브라질의 제도권 언론을 비난하는 초유의 선거캠페인을 구사하고 있다.
그에 대한 인기는 반(反) 세계화 확산 경향과 인종적·사회적 결점을 악용하려는 서구 정치권의 추세를 반영한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미국과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이 이민자와 소수민족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브라질에서는 흑인 서민층의 상대적으로 빠른 소득향상에 불만을 가진 백인 상류층을 지지 배경으로 하고 있다.
좌파 노동당이 집권한 10년간 우대정책에 힘입어 흑인 서민층 자녀가 대거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경기가 침체일로를 걸으며 중산층들의 불만을 샀다.
2016년 대선 당시의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보우소나루 후보가 소수민족과 여성에 대한 혐오성 발언에도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범죄와 정치적 부패를 단속하고 좌파 정부의 재출현을 막겠다는 보우소나루 후보의 공약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브라질에 법과 질서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처럼 인식되고 있다. 27년간 리우데자네이루 지역구 의원을 지낸 그는 자신을 의회내 '아웃사이더'로 이미지 메이킹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선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몇 달간 논쟁적 발언 수위를 점차 누그러뜨리고 있다. 지난 4일에는 트위터에 브라질의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고 성 불평등에 대한 입장을 완화하는 포스트를 올리기도 했다.
심지어 세번째 결혼한 부인을 두고 있으면서도 가족 가치의 복원이라는 주장으로 보수 가톨릭 교계에서도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지난달 6일 보우소나루 후보가 유세 도중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복부를 찔린 뒤 수술을 받고 퇴원하자 트위터에는 '신의 가호'라는 축복이 쏟아졌다.
상파울로 게툴리오 바르가스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길레메 카사레예스는 "보우소나루는 의식적이고 신중하게 트럼프와 닮으려하고 있다"며 "5년전엔 동성애에 반대하는 의원일 뿐이었으나 이제는 트럼프처럼 실제보다 더 큰 인물이 됐다"고 말했다.
좌파의 정적들을 부패하고 서투른 급진주의자로 몰아세우고 우파 경쟁자에 대해선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지 못하는 유약한 중도파라고 비판하며 정치적으로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유권자 계층을 끌어안고 있다고 카사레예스 교수는 진단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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