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신동빈 징역 2년 6월에 집유 4년 선고…이재용과 똑같은 형량
재판부 "재벌 상황 판단 안해" 강조에도…재벌 적용 '3·5법칙' 상기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서울고법이 5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석방하면서 법원이 선처성 판결을 내린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8부(강승준 부장판사)는 "재벌가의 특수한 상황은 판단에 고려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수십억원대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로 판결한 것은 통상적인 예측을 벗어난 형량으로 여겨진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 경영비리에 연루된 혐의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를 동시에 받는다.
경영비리는 1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기 때문에 이날 선고의 최대 쟁점은 그가 면세점 신규특허를 기대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정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의 부정한 금품을 건넨 혐의(제3자 뇌물공여)가 인정되는지였다.
롯데 측과 뇌물거래를 한 것으로 조사된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지난 8월 먼저 선고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신 회장의 역시 뇌물 규모 등을 고려하면 1심처럼 실형이 선고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신 회장의 뇌물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지원금을 교부한 피고인에게 책임을 엄히 묻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뇌물을 건넨 것은 맞지만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응한 것에 불과하고,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거란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신 회장은 지원금이 공익적 활동에 사용되리라 예상하며 지원했다"면서 이후 면세점 특허와 관련해 별다른 특혜를 받지도 못했다고 봤다.
사업 특혜를 바라며 권력자에게 적극적으로 금품을 건네는 통상의 뇌물 사건과는 속성이 상당히 다른 만큼 양형 역시 달라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 진다.
그렇더라도 70억원에 달하는 금품거래의 규모나 기업의 투명경영 책임 등을 따지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신 회장이 받은 형량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2월 2심에서 풀려나며 받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과 동일한 형량이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때도 "재벌가에 적용되는 '3·5 정찰제' 집행유예 공식이 약간 바뀌었을 뿐 되살아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3·5 정찰제'란 법원이 기업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시민사회나 정치권 등에서 풍자하며 사용하는 용어다.
실제로 이건희 삼성 회장과 두산그룹 박용오·박용성 전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상당수의 재벌 총수들이 1심이나 2심에서 이와 같은 선고를 받았다.
이 부회장은 2심에서 인정된 뇌물 액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사정이 있었지만, 신 회장의 경우 1심과 뒤바뀐 판단이 없었는데도 '실형'이 '집행유예'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법원이 양형을 결정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엄중히 따지기보다는 기업인의 현실을 더 많이 고려하는 '유전무죄'식 시각을 버리지 못한 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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