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독립 주장하는 세르비아계 정치인 대통령 당선 여부에 관심 집중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약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스니아 내전이 종료된 지 23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민족·종교 간 갈등으로 인한 분열의 불씨를 안고 있는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한다.
340만명에 달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유권자들은 7일 오전(현지시간) 수도 사라예보를 비롯한 전국 곳곳의 투표소에서 중앙정부의 대통령 위원과 하원의원, 중앙정부 산하의 2개 하위 체제의 대표를 각각 뽑기 위한 투표를 시작한다.
1992년 옛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복잡하게 얽힌 민족·종교 간 갈등으로 독립 직후 3년에 걸쳐 내전에 휩싸였고, 서방의 개입으로 1995년 데이턴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전쟁을 끝낸 뒤 민족 구성에 따라 1국가 2개 하위 체제로 나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무슬림이 주류인 보스니아계 주민이 약 50%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가 약 31%,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크로아티아계가 약 15%, 유대인과 집시 등 기타 민족이 약 4%로 뒤를 잇는다.
내전을 촉발한 민족과 종교에 따른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족과 종교 간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다 보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행정 체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난해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선거 역시 이런 행정 체계가 반영된 까닭에 복잡한 절차로 진행된다.
우선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로 구성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FBiH)과 세르비아계 위주인 스르프스카 공화국(RS) 두 하위 체제 주민들은 이날 선거를 통해 중앙정부의 대통령 위원회를 채울 대통령 위원 3인과 중앙정부의 하원의원들을 선출한다.
중앙정부의 대통령 위원 3인은 각각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출신으로 채워지며, 이들 3명의 위원은 8개월씩 번갈아가며 국가 원수인 대통령 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
FBiH 주민들은 이날 또한 FBiH의 상하원 의원과 연방 산하 10개 칸톤(주)의 의회를 대표할 의원도 함께 뽑게 된다. RS 주민들의 경우 RS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의회 의원을 뽑기 위한 표를 동시에 행사하게 된다.
이번 선거를 통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잠재된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된 다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한 발짝 다가서느냐, 아니면 다시 분열의 길로 나아가느냐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대통령 위원으로 누가 승리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르비아계 대통령 위원 자리를 놓고는 SR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밀로라드 도디크 현 SR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믈라덴 이바니치 대통령 위원과 격돌한다.
서방에 적대적이고, 친(親)러시아 성향을 지닌 도디크 대통령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가 저지른 인종청소를 부정하는 민족주의자로 SR의 분리독립을 국민투표에 부칠 계획을 천명해왔다.
통합을 강조하는 온건한 성향의 이바니치 현 위원은 이에 대해, "도디크 대통령의 승리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불안과 갈등, 고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크로아티아계 대통령으로는 재선을 노리는 드라간 초비치 위원과 2006∼2014년 대통령 위원을 지낸 젤리코 콤시치가 맞붙는다.
민족주의 성향의 초비치 대통령은 현재 FBiH에서 크로아티아계가 홀대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크로아티아계가 주류를 차지하는 제3의 하위 체제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콤시치 전 대통령 위원은 초비치 위원의 이런 구상은 "필연적인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민 상당수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치 진영들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민족적 갈등과 증오심을 부추기는 데에만 골몰하고, 일자리나 경제 발전을 위한 공약은 거의 내놓지 않는 것에 염증을 표출했다.
중부 트라브니크에서 금속처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녜차나 코에프루네르 씨는 로이터에 "TV를 켜고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업체를 정리해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전체 주민의 약 3분의 1이 실업상태에 놓여 있는 발칸반도의 최빈국 중 하나로, 2013년 이래 총 인구의 5%에 이르는 약 17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고국을 등진 것으로 집계될 만큼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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