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원래 주인이 소유권 기증" vs 소장자 "원래 내 소유"
"소중한 문화유산 소유권 문제 떠나 국민에 공개해야" 여론 비등
(대구=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제572돌 한글날을 맞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재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례본 상주본은 2008년 7월 경북 상주에 사는 고서적 수집판매상인 배익기(54)씨가 집을 수리하던 중 국보 70호인 해례본(간송미술관본)과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예의(例義), 해례(解例), 정인지 서문 가운데 일부가 없어졌지만 상태가 양호했고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와 소리 등에 관한 연구자 주석이 있어 학술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상주본이 1조원 가치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배씨가 상주본을 공개하자 상주에서 골동품 매매를 하던 조용훈(2012년 사망)씨는 배씨가 책을 훔쳐갔다며 '물품 인도 청구소송'을 내고 형사 고소까지 했다.
이후 조씨는 대법원에서 상주본의 원래 주인이라는 판결을 받아냈고, 사망 전 상주본 소유권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반면 배씨는 절도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했고 1년여 감옥에 있다가 2014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대법원은 "훔쳤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배씨는 절도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은 뒤 소유권을 계속 주장하며 상주본의 소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3월 배씨 집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상주본 일부가 훼손됐고 배씨는 훼손된 상주본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배씨가 상주본 소재를 밝히지 않자 문화재청은 지난해 "상주본을 인도하지 않으면 반환소송과 함께 문화재 은닉에 관한 범죄로 고발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배씨는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절도 혐의를 씌워 내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 상주본을 빼앗으려는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청구이의의 소'를 냈다.
관할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수차례 조정을 시도했으나 배씨가 "억울한 옥살이 1년에 대한 진상규명과 문화재청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해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 2월 배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재판을 맡았던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배씨가 받은 무죄 판결은 증거가 없다는 의미이지 공소사실 부존재가 증명됐다는 것은 아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어 "원고(배씨)는 국가 소유권을 인정한 민사판결 이전에 상주본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지만 청구이의의 소는 판결 이후에 생긴 것만 주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배씨 청구가 기각된 뒤 "강제집행 절차를 밟겠다"고 했지만 상주본 소재는 배씨만 알고 있어 아직 강제집행은 못하고 있다.
배씨는 '청구이의 소송'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은 지난 7월 첫 변론을 한 뒤 8월 하순 선고를 할 예정이었지만 배씨 측 대리인이 변론 재개를 신청해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상주본을 놓고 배씨와 문화재청 입장이 완전히 엇갈리는 상황이어서 항소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지역에서는 보고 있다.
시민 박모(40·여·대구 수성구)씨는 "상주본이 누구에게 소유권이 있느냐는 문제를 떠나 우리 겨레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배씨와 문화재청이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점을 찾아 하루빨리 국민이 상주본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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