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까지 유력인사와 가깝게 지내"…개혁 지지로 강경 이슬람지도자와 대립
'아랍의 봄' 거치며 아랍 정부 강하게 비판…사우디 정부와 틀어져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터키 이스탄불의 자국 총영사관에서 살해됐다는 의혹이 퍼진 사우디아라비아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우디 정보기구 수장의 보좌 역할을 할 정도로 정권과 가까웠다.
8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을 졸업한 후 1980년대부터 언론에 몸담은 카슈끄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알제리 전쟁, 수단 내 이슬람 근본주의 등을 취재하며 언론인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두 차례 오사마 빈라덴을 인터뷰하는 등 막강한 취재력을 바탕으로 사우디 정보기관 수장 투르키 알파이살과 가깝게 지냈다. 파이살이 주미 대사로 재임할 당시 그의 언론 보좌역도 맡았다.
왕실 인사들과도 어울리며, 왕실이 강경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을 설득해 개혁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지지했다.
그는 이슬람주의 계열 신문 알마디나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서방 언론에도 극단주의와 개혁주의 이슬람 세력에 관한 전문가로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카슈끄지가 사우디 건국에 일조한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즘'의 초기 지도자 이븐 타이미야와 종교 경찰에까지 날 선 비판을 가하자, 그와 이슬람 원리주의 지도자 사이 갈등도 점차 커졌다.
그는 2003년 개혁 성향 일간지 알와탄의 편집인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로 이직 2개월 만에 해고됐다.
2007년에 와탄지(紙)로 복귀했으나 와하비즘에 뿌리를 둔 이슬람 근본주의 '살라피즘'을 비판하는 글이 문제가 돼 사임했다.
2011년 튀니지를 시작으로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 민중봉기 때 카슈끄지가 반정부 세력을 지지하며 아랍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와 사우디 정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그는 사우디 정부가 테러조직으로 분류한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한다.
이슬람권 국가 중에는 수니파이면서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정권이 그의 정치관과 가까운 체제로 볼 수 있다.
그의 약혼자도 터키인이다.
최근 카슈끄지는 사우디 정부의 카타르 단교, 예멘 내전 개입, 이란 정책 등 주요 외교 기조를 "속이 좁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의 '숙청' 정국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카슈끄지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신변 위협을 느낀다고 토로하면서, "현재로서는, 빈살만이 푸틴처럼 행동한다고 말하겠다"며 "그는 법을 선택적으로(입맛대로) 집행한다"고 썼다.
최근 터키에 본부를 둔 시리아 반정부 세력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카슈끄지는 "사우디는 정치적 이슬람의 부모이자, 정치적 이슬람에 바탕을 둔 나라"라면서 "이란을 시리아에서 빼내는 유일한 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그 누구도 아니고, 오직 시리아 혁명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인터뷰 며칠 후 이달 2일 이혼 확인서류를 수령하러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간 후로 실종됐다.
7일 터키 고위 당국자는 외신을 통해 그가 총영사관에서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히고, 피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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