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범죄 저질렀지만 공소시효 지나"…피해자 "상고할 것"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스페인 군부독재 시절 신생아를 친부모 몰래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80대 의사가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피했다.
8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 마드리드 지방 법원은 이날 유괴와 사기, 서류 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산부인과 의사 에두아르도 벨라(85)에 대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인정되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벨라는 자신의 병원에서 1969년 태어난 이네스 마드리갈(현재 49세)이라는 여자아이를 생모에게서 몰래 빼앗아 서류를 조작한 다음 다른 여성에게 준 혐의로 기소됐다.
생모에게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고 말하고 병원이 알아서 시신을 매장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마드리갈은 입양된 부모가 죽기 전 자신이 의사로부터 건네졌다는 얘기를 들었고, DNA 조사 결과 이것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마드리갈은 지난 2012년 4월 벨라를 고소했고, 스페인 검찰은 그를 기소한 뒤 11년형을 구형했다.
스페인에서는 인민전선 정부를 쿠데타로 뒤엎고 정권을 잡은 독재자 프란시스 프랑코(1892∼1975)의 집권 시기 배후를 알 수 없는 신생아 납치나 강제 입양 사건이 많았다.
처음에는 독재정권의 편에 선 세력이나 그 하수인들이 공화주의 좌파 세력을 말살시키고자 좌파 정치인이나 운동가들의 아이를 몰래 병원에서 빼돌려 암매장하거나 다른 가정에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1950년대 시작된 이런 잔악한 범죄는 좌파진영을 넘어 빈곤층 또는 동거커플 등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아기들로까지 확대됐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종교적으로 신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그릇된 믿음이 작용한 것으로 지적된다.
그동안 스페인에서는 유사한 의혹이 수천 건 제기됐지만 모두 증거불충분이나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까지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마드리갈 역시 결국 벨라를 법정에 서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처벌하는 데는 실패했다.
스페인 현행법상 마드리갈은 성인이 된 1987년 이후 10년 안에 불법적인 구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이미 시한이 지났다는 것이다.
마드리갈은 자신이 '납치된 아이'였다는 것을 2010년에 알게 됐고, 이후 2년 안에 고소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드리갈은 의사의 죄를 묻기 위해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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