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SNS위법규제법 들여다보니…가짜뉴스보다 '혐오' 방지 초점(종합)

입력 2018-10-09 21:49  

獨 SNS위법규제법 들여다보니…가짜뉴스보다 '혐오' 방지 초점(종합)
'증오표현, 테러선동·허위정보' 규제하는 형법, 온라인서 적용
가짜뉴스는 혐오관련 허위정보로 규제…좌파·극우 반대속 1년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정부와 여당이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법적 조치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독일의 관련 사례가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 근절을 주장하면서 독일의 입법 사례를 근거로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도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범정부 대책을 마련 중이어서, 독일의 사례가 일정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독일의 관련 법명은 '소셜네트워크(SNS) 내 법 집행 개선법'(이하 SNS위법규제법·NetzDG)으로, 지난 1일로 시행된 지 만 1년이 됐다.
이 법은 국내에 사실상 '가짜뉴스 방지법'으로 소개됐는데, 가짜뉴스 자체보다는 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 표현과 테러 선동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맞춘 법으로 볼 수 있다.
이미 형법상의 표현물 처벌을 사실상 규제의 사각지대였던 SNS 공간으로 옮긴 셈이다.
가짜뉴스 전반의 근절에 초점을 맞춘 한국의 가짜뉴스 방지법 추진과는 문제의식의 출발점에서 다소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SNS위법규제법의 적용 대상은 SNS에 한정돼 있기도 하다.

◇ 독일법 초점은 '혐오 방지'…관련 '허위정보' 규제
한국에서 추진되는 가짜뉴스 방지법은 일부 보수 논객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왜곡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정치적 주장을 펼친다는 여권과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
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이미 지난 4월 이른바 '가짜정보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 언론사 정정보도 ▲ 언론중재위원회 결정 ▲ 법원 판결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삭제 요청 등을 기준으로 '가짜 정보'를 규정, 온라인 사업자를 상대로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게 핵심이다.
이낙연 총리는 가짜뉴스를 "사회적 공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정부는 대대적인 대응조치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의 '근거'가 된 독일의 SNS위법규제법의 배경과 취지는 가짜뉴스 자체가 아니라 '혐오표현'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도 그 범주내에서 '허위정보'로서 규제하고 있어, 법 제정의 배경과 취지에서는 차이가 난다.
이 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SNS 업체가 혐오 및 차별 발언, 테러 선동, 허위 정보, 아동 및 미성년자 포르노, 위헌단체의 상징물 등 불법 게시물을 차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독일에서 이용자 수가 200만 명 이상인 SNS가 적용 대상이다.
이용자들이 '신고'하거나 자체적으로 '발견'한 콘텐츠를 24시간 이내에 접근 차단하고 위반행위 검증 시 7일 이내 삭제해야 한다.
사업자가 이런 의무를 위반할 경우 최대 5천만 유로(약 648억원)의 벌금을 물린다. 벌금 규모상 법을 지키기 위해 모니터링 및 관련 솔루션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또한, 사업자는 6개월 마다 모니터링 및 조치 결과를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이에 따라 유튜브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이용자들로부터 21만5천 개 정도의 콘텐츠에 대해 법 위반 신고를 받았다고 당국에 신고했다. 유튜브는 이 가운데 27%인 5만8천 개에 대해 차단 등의 조처를 했다.
페이스북은 1천704건의 신고를 받고 362건에 대해 삭제 등의 조처를 했다.

◇ 온라인서 '증오·선동·허위사실' 범람…형법 '사각지대' 해소
SNS위법규제법은 독일의 형법 130조를 온라인상에서 실질적으로 적용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형법 130조 2항은 인종·민족·종교 등 특정 그룹에 대한 증오심 선동과 악의적 비방, 허위사실 유포 등 시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로 소수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조항이다.
그러나 증오 발언 등이 무차별적으로 게시·유포되는 온라인이 사실상 형법 적용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고, 독일의 '난민 위기' 속에서 난민 및 이슬람, 유대인에 대한 혐오 발언의 증가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결국 온라인 사업자를 규제하는 SNS위법규제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최근 독일 당국은 페이스북 등이 형법에 규정된 대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부정하는 게시물을 차단하는지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 야당 반대 속 1년 시행…부작용 덜했다는 평가도
지난 1일로 시행 만 1년이 된 이 법은 제정과정에서부터 정치·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다. 대연정 3당인 중도우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좌파 정당뿐만 아니라, 친(親)기업성향 정당, 극우 세력까지 개인 및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반대했다.
당초 이 법의 제정을 밀어붙인 사람은 현 외무장관인 하이코 마스 당시 법무장관이었다. 사민당 소속의 마스 장관은 SNS에서 혐오 발언 등 폭력적인 언어, 테러리즘의 선전 등을 막아야 한다며 이 법안을 밀어붙였다.
SNS에서 난민과 이민자에 대해 혐오 발언과 인종차별적인 게시물을 막고 신(新)나치의 준동을 막아 민주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극우성향 정당으로 급부상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깔렸다. 주류 언론의 외면을 받아온 AfD는 SNS를 선전수단으로 삼아 난민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겨 지지층을 확장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연정을 제외한 모든 정당은 이 법안에 등을 돌렸다. 진보정당인 녹색당과 좌파당, 자유주의적 성향의 자유민주당, AfD가 반대의견을 냈다.
진보정당과 자민당은 SNS 기업이 국민의 발언을 검열하는 데다, 사실상의 사법권을 행사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AfD는 올해 SNS위법규제법을 무력화시키는 조항을 추가하는 내용으로 형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언론단체도 SNS위법규제법을 반대했고, 시민단체에 의해 위헌 소송도 제기됐다.
특히 민주적인 정부에서는 부작용이 덜하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법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을 억압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야당의 반대에도 대연정은 법안을 처리해 지난해 10월부터 법이 발효됐다. 다만, SNS 기업들이 대책을 만들 수 있도록 연말까지 법 집행을 유예하는 조항을 뒀다. 실질적으로 지난 1월부터 적용된 셈이다.
독일 언론에서는 시행 1년이 된 시점에서 대체로 우려했던 것보다 부작용이 덜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법이 시행되자 난민 및 이슬람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AfD 의원들의 트위터 발언 등이 여러 차례 차단됐다.
그러나 독일의 풍자전문 월간지 '타이타닉'이 AfD 의원의 증오 선동 발언을 풍자 및 비판하는 콘텐츠를 트위터에서 유통시키자, 해당 콘텐츠 및 계정이 차단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사업자들이 게시물의 차단 및 삭제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법을 둘러싼 논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야당의 법안 개정 요구가 계속되면서 SNS위법규제법은 독일 정치·사회의 논란거리 중 하나로 남을 공산이 커 보인다.
베를린 훔볼트대 이진 박사는 통화에서 "SNS가 새롭게 일정한 정보미디어 기능을 하게 됐기 때문에 최소한의 필터링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는 요소도 SNS위법규제법에 반영됐다"며 "한국의 경우 최소한의 필터링 의무에 대해 어느 정도 국가의 강제력이 들어갈지에 대해서는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를 바탕으로 정교한 제도적 설계와 정치·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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