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만 유류탱크 옆에 잔디…"왜 심었는지 모른다"
송유관공사 해명 브리핑…"화재감지기는 없다.유증기감지기만 2개"
(고양=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고양 저유소 화재'는 인근에서 날아온 풍등이 추락해 잔디에 불이 붙고, 이 불씨가 다시 휘발유탱크의 유증환기구를 통해 들어가면서 폭발로 이어진 것으로 잠정 결론 났다.
풍등 추락에서 폭발까지 18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설 근무자의 모니터링에 의해서든 자동 감지장치에 의해서든 전혀 화재가 인지되지 않아 '총체적 관리부실'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화재를 조사한 경찰발표를 보고 시민들은 기름탱크와 같이 화재와 폭발 위험성이 큰 시설에 불이 잘 붙는 잔디를 왜 심어놓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9일 자처한 화재 관련 브리핑에서 잔디가 심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공사 측도 "모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송유관공사 조영완 대외협력팀장(CR팀장)은 "시설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잔디가 있었으며, 왜 심어졌는지는 조사과정에서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 잔디는 지난 추석 명절 전에도 짧게 깎는 등 경인지사 측 관리 대상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는 이어서 "공사에서 관리하는 전국 저유소 8개 중에 고양만 외부가 잔디로 돼 있고 나머지는 아스팔트다"면서 "다만 미군의 기름탱크(왜관·의정부)도 외부가 잔디로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증기를 강제로 회수해 태우는 장치를 설치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유증기 회수기를 설치하려면 1기당 비용이 17억원이 들어가는데 효율에 비해 비용이 너무 큰 것 같다"고 답변했다.
잔디에 불이 붙은 뒤 폭발 직전까지 연기가 나는 장면을 관제실에서 폐쇄회로(CC)TV를 통해 볼 수 있었음에도, 근무자 누구도 이를 유심히 보지 못한 사실도 드러났다.
조 팀장은 "통제실에 인력이 2인 1조로 근무하는데, CCTV만 보는 전담 인력은 없다"면서 "CCTV가 45개가 있는데 화면이 격자로 작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에서는 사고 당시 근무자가 1명만 통제실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14개의 유류탱크가 있는 시설 외부에 자동 감지기는 2개뿐이며, 이마저도 화재감지기가 아니라 유증기 감지용인 것도 대형사고를 방지할 수 없었던 원인이 됐다.
유증기 감지기는 불이 났을 때 나오는 불꽃, 연기, 가스는 감지할 수 없다.
쉽게 얘기해 담배꽁초와 같은 인화성 물질이 잔디에 떨어져 불이 나더라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자동으로 감지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한 것이다.
화재감지기는 국가중요시설인 판교 저유소에도 설치돼 있지 않아, 안전 관리에 크게 구멍이 나 있음이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됐다.
조 팀장은 이날 오후 3시께 대한송유관공사 교육장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이날 오전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대한송유관공사 측이 18분 동안이나 잔디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데 대해 해명하는 성격이 짙어 보였다.
그런데 그가 "카메라는 다 나가달라, 카메라 있으면 브리핑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 황당한 요구를 고집하며 취재진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브리핑은 촬영 없이 진행됐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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