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확대하려 하자 지휘부가 "지금 어느 땐데…"…복지원 본원 조사도 못해
"부랑인 아닌데도 위법 감금…추가 진상규명 및 피해자 회복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10일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피해자에 사과하고 특별법을 제정해 추가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놨다.
과거사위는 대검찰청에 꾸려진 진상조사단으로부터 형제복지원 사건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형제복지원의 위법한 수용과정 및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추가 진상규명 및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처럼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이어 "검찰이 수사를 축소하고 은폐한 사실이 확인됐고, 그로 인해 형제복지원 본원에 대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가 확대됐다"며 검찰총장도 피해자들에게 과거의 과오를 사과하라고 주문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당시 수사의 문제점을 소상히 알리는 것은 물론 검사 개개인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확고히 정립할 수 있는 제도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일종의 수용시설처럼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시민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복지원 자체 기록만 봐도 폐쇄될 때까지 12년간 운영되는 동안 513명이 사망했고, 그들의 주검 일부는 암매장되거나 시신조차 찾지 못해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린다.
검찰은 1987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 대한 수사를 벌여 불법 감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현 울산지검) 검사로 있으면서 이 사건을 수사한 김용원 변호사는 외압에 의해 사건이 왜곡·축소됐다고 주장해왔다.
진상조사단도 관련자 면담 조사를 통해 부산지검 등 당시 검찰 지휘부가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수사가 무산되도록 하고 원장의 보조금 횡령 혐의 수사마저 중단시키려 하는 등 검찰 지휘부의 수사방해가 사실로 확인됐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 당시 부산지검장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으로, 박 전 의장은 진상조사단 조사에서 수사축소 의혹에 대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조사단은 과거 수사 당시 조사 범위를 확대하려 하자 당시 부산지검 차장검사가 "○○놈, 지금 어느 땐데 그런 수사를 하느냐"고 호통쳐 조사를 중단시켰다는 김 변호사의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조사단은 당시 부랑인뿐만 아니라 부랑인이 아닌 사람들도 복지원에 수용하는 등 수용과정이 위법했다는 의혹, 감독관청인 부산시의 방조·묵인이 있었다는 의혹 등도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고 결론지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4월 위헌인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은 불법 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재조사를 권고했다. 검찰은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대검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당시 수사 검사와 수사관, 검찰 지휘부, 수용자 등을 상대로 불법수용과 인권침해, 수사방해 등이 있었는지 조사를 벌였다.
대검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도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 위헌·위법인 내무부 훈령 410호를 적용해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등 원생들에 대한 특수감금 행위를 형법상 정당행위로 보고 무죄로 판단한 당시 판결을 비상상고하라고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한 바 있다. 이날 과거사위도 검찰개혁위에 이어 같은 취지로 비상상고를 문 총장에게 권고했다.
대검은 이날 과거사위 권고에 대해 "인권침해의 중대성과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염려를 잘 알고 있다"며 "과거사위 권고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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