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우드서 정부·언론계로…들불처럼 번지는 인도 '미투'

입력 2018-10-10 15:06  

발리우드서 정부·언론계로…들불처럼 번지는 인도 '미투'
외교부 부장관도 도마에…"미투, 파도처럼 밀려와"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인도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한발 늦게 시작됐지만, 양상은 거세다.
발리우드에서 정부, 언론계 등 전방위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10일(현지시간) 인디언익스프레스, NDTV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여기자 6명 이상이 최근 M J 악바르 외교부 부장관(공식 직함은 외교부 국무장관)의 과거 성희롱 행위를 폭로했다.
기자들은 언론인 출신인 악바르 부장관이 신문사 편집장 시절 성희롱과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인디언 익스프레스, 민트 등에서 근무한 프리야 라마니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작년 10월 잡지 보그인디아에 과거 한 언론사 간부가 자신을 호텔 방으로 불러 면접을 보면서 추근댔다고 폭로한 라마니가 최근 트위터를 통해 그 간부의 이름이 악바르 부장관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그러자 다른 여기자들도 트위터 등을 통해 "나도 호텔로 호출 당한 적이 있다", "그가 내 등 뒤에서 브라의 끈을 당겨 나는 소리를 질렀다" 등 줄줄이 폭로 대열에 동참했다.
이에 악바르 부장관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악바르 부장관의 직속상관이자 여성인 수슈마 스와라지 외교부 장관도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NDTV는 스와라지 장관은 9일 이번 사안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인도에서도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이 여럿 나왔지만 크게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남성 위주의 보수적 문화가 지배적인 데다 피해 여성들 대부분이 실명 공개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발리우드의 한 여배우가 10년 전에 폭로한 성추행 경험이 재조명되면서 지난달 미투 운동이 본 궤도에 올랐다.



'미스 인도' 출신 배우인 타누시리 두타는 2008년 영화 촬영 도중 상대 유명 배우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사건 직후 폭로했다.
두타는 상대 배우 나나 파테카르가 촬영 중 더 깊은 관계를 원해 이를 거부했더니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차량을 파손하며 위협했다는 주장도 폈다.
당시 두타의 폭로는 상대 배우의 부인과 함께 잠잠해졌다가 최근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프리얀카 초프라를 포함한 유명 배우들이 소셜미디어상의 해시태그(#BelieveSurvivors) 달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당시 사건 목격자들이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며 증언에 나서면서다.



이렇게 촉발된 미투 운동은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언론인, 연예인 등 여성들이 용기를 내 '실명 폭로'를 이어가자 이에 자극 받은 다른 이들도 앞다퉈 자신의 피해를 공개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성 작가 마히마 쿠크레자에게 외설적인 사진을 보낸 인기 코미디언 우스타브 차크라보티가 방송에서 물러났다.
쿠크레자가 관련 내용을 폭로하면서 차크라보티를 고소하자 차크라보티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차크라보티가 소속됐던 굴지의 기획사 AIB의 최고경영자(CEO) 탄마이 바트도 차크라보티의 일탈에 대해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퇴 압력을 받은 끝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세이크리드 게임'을 만든 발리우드 유력 제작사 팬텀 필름은 이번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아예 해체됐다.
주요 주주들 가운데 한 명이자 감독인 비카스 발이 여배우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나머지 주주들이 공개 사과한 뒤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
인도 일간지 힌두스탄타임스의 정치에디터 프라샨트 자도 인도 현직 언론인 중에는 처음으로 미투 운동과 관련해 최근 보직 사퇴했다.
인도 최대 일간지인 타임스오브인디아의 여기자들도 사내에서 간부에 의한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성추행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인권운동가이자 변호사인 브린다 그로버는 뉴욕타임스에 지금까지는 불만을 제기한 여성만 당했지만 이제는 불법을 저지른 이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인도의 미투 운동은) 마치 파도가 몰려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coo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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