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기업들, '카슈끄지 실종' 사우디와 거리두기

입력 2018-10-12 10:02  

美·英 기업들, '카슈끄지 실종' 사우디와 거리두기
英 버진그룹 사우디 국부펀드(PIF) 투자 논의 중단
NYT 등 언론, PIF 주최 투자 콘퍼런스 후원사에서 빠져

(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유력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실종 사건 이후 미국과 영국의 기업들이 사우디 정부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사우디 왕실을 비판한 카슈끄지는 지난 2일 개인적인 서류를 발급받으려 터키의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행방불명됐다.
사우디 정부는 그가 총영사관을 나간 뒤 실종됐다고 주장했지만 레제프 타이프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를 증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터키 당국은 그가 총영사관 안에서 사우디 정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살해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어느 쪽도 확실한 증거를 내놓고 있지는 않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 버진그룹의 창업자 리처드브랜슨 회장은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10억 달러(약 1조1천400억원)를 투자하는 계획에 대한 논의를 중단했다.
브랜슨 회장은 지난해 10월 사우디를 방문해 PIF가 미국에 있는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과 '버진 오빗'(Virgin Orbit)에 총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브랜슨은 또 사우디 정부가 이끄는 홍해 관광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문이사직도 그만뒀다.
브랜슨은 FT에 "만일 (카슈끄지가 사우디에 의해 살해됐다는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서방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사우디 정부와 비즈니스를 하는 능력을 분명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 에너지장관을 지낸 어니스트 모니즈도 무함마드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주도하는 5천억달러 규모의 메가시티 프로젝트와 관련한 자문이사역을 그만뒀다.
또 이 자문이사회의 멤버로 임명된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도시개발 부문인 '사이드워크 랩스'의 CEO 댄 닥터로프와 애플의 수석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도 실수로 이름이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오는 23~25일 사우디 리야드 리츠칼튼에서 PIF 주최로 열리는 글로벌 투자 콘퍼런스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이 행사는 세계 최대 '큰 손'인 PIF로부터 투자를 받거나 거래를 원하는금융과 재계의 글로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사막의 다보스'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행사에선 JP모건 제이미 다이몬 회장, 우버 최고경영자(CEO) 다라 코스로샤히, 블랙록 CEO 래리 핑크, 비아컴의 밥 바키쉬 등이 연설을 할 예정이다. 미국정부에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참석할 예정이다.
블랙록과 비아컴 대변인들은 FT에 경영진이 참석할지를 놓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행사의 언론 후원사인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후원사에서 빠지기로 했다.
영국 시사잡지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 민톤 베도스도 연설이 예정돼 있었지만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11일자 사설에서 사우디 빈 살만 정부가 아랍 민족주의 독재를재개하기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마찬가지로 언론사 후원사인 FT는 "참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체포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지낸 카슈끄지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 기고들을 통해 사우디 왕실을 비난했다.
바레인 인권단체인 '버드'는 성명에서 "뉴욕타임스는 리야드 콘퍼런스 후원자에서 빠졌다. 재개와 FT가 뒤따를 때다. 한 명의 언론인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걸프국에 있는 한 은행 경영진은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나타날지를 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라며 "그들과 거래 관계가 있거나 미래 기회를 약속받은 이들만 올 것으로 생각된다"고 추측했다.


jungw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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