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체당금으로 임금·퇴직금 지급…사촌 명의 새 업체 차려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회삿돈 23억원을 횡령하고, 근로자 임금과 퇴직금 지급을 피하려고 회사를 위장 폐업한 사업주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A(58)씨는 2006년부터 울산 한 조선소에서 선박 도장을 하는 하청업체를 운영하면서, 총무로 고용한 사촌 동생인 B(46)씨에게 회계와 인력관리 등 회사 운영 전반을 맡겼다.
A씨는 원청업체에서 받은 기성금 일부를 가로채고자 2007년 7월 B씨를 시켜 500만원을 개인 계좌로 송금하게 하는 등 2012년까지 73회에 걸쳐 총 23억7천만원 상당을 횡령했다.
A씨 회사는 조선업 경기 침체와 A씨의 방만한 경영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
이에 A씨와 B씨는 위장 폐업으로 근로자 임금과 퇴직금 등 지급채무를 정리한 뒤, 명의를 바꿔 선박 도장업체를 다시 운영하기로 했다.
A씨 등은 2016년 5월께 회사를 폐업하는 절차를 밟는 동시에 B씨를 사업주로 하는 또 다른 회사를 설립했다.
새로 설립한 업체는 폐업한 업체에 있던 근로자 대부분을 계속 고용하고, 사무실·집기·자동차와 전화번호까지 폐업 업체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사실상 똑같은 회사인 셈이다.
그런데도 A씨 등은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별도 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회사를 폐업했다'고 허위 보고한 뒤, 근로자 39명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체당금 3억원가량을 받도록 했다.
체당금은 도산업체 근로자가 사업주로부터 임금과 퇴직금 등을 받지 못할 때, 국가가 대신해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A씨는 이 체당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지급채무 면제에 악용한 것이다.
A씨는 이밖에 퇴직 근로자 2명의 임금과 퇴직금 총 4천2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도 기소됐다.
울산지법 형사12부(이동식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또 사기와 임금채권보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령했다.
A씨는 재판에서 "회사를 위장 폐업한 적이 없고, 체당금 지급 신청 과정에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적이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동일한 주소를 사업장으로 등록하고 집기와 전화번호 등을 인계해 사용한 점, 고용이 승계된 35명 근로자 근속연수가 그대로 인정된 점, 조선소에서 하도급받은 일을 단절 없이 승계해 작업한 점, B씨는 명목상 대표에 불과하고 A씨가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한 점 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외형상 회사를 폐업 처리했을 뿐, 실제로는 개인사업체 형태로 계속 사업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회사 폐업과 설립 등 일련의 과정은 근로자들 체불임금을 해결하기 위한 불법적인 수단에 불과했다"고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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