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깊은 인연' 교황 바오로 6세 가톨릭 성인 반열에

입력 2018-10-14 06:00  

한국과 '깊은 인연' 교황 바오로 6세 가톨릭 성인 반열에
프란치스코 교황, 로메로 대주교 등 7명 바티칸서 시성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지닌 교황 바오로 6세와 중미 엘살바도르의 우파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미사 집전 도중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가톨릭 성인 반열에 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오전(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시성 미사를 열고 교황 바오로 6세와 로메로 대주교 등 7명을 가톨릭의 새로운 성인으로 선포한다.



격동기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이끈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 바오로 6세(재위 기간 1963∼1978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재개함으로써 라틴어 미사 폐지와 같은 가톨릭 교단의 광범위한 개혁을 완수한 교황으로 널리 기억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는 교황이기도 하다.
해방 후 정부를 수립한 한국이 1949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를 앞두고 유엔의 승인을 획득하고자 노력할 당시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청 국무원장 서리로 재직하며 각국 대표와 막후교섭을 통해 장면 박사가 이끈 한국 대표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신생국인 한국이 유엔의 승인을 받아 국제 사회의 공식 일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에는 당시 주프랑스 교황청 대사로, 훗날 교황 요한 23세로 즉위한 론칼리 대주교와 교황 바오로 6세의 이 같은 노력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이 외교가의 평가다.
1969년 3월 김수환 추기경을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전격 서임한 것도 교황 바오로 6세였다.
교회 상설기구 겸 교황의 자문기구로 전 세계 주교 대표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설립한 주인공이기도 한 교황 바오로 6세의 시성식은 공교롭게도 이 회의 기간과 맞물렸다.
지난 3일 개막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명한 대의원 자격으로 참여 중인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는 "바오로 6세는 한국에게는 '은인'이나 다름 없다"며 "비단 한국 가톨릭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준 교황 바오로 6세가 성인으로 추대되는 것은 한국으로서도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또한 역대 교황 가운데 최초로 정교회 등 기독교 다른 종파의 지도자를 만나 교회의 일치를 모색하고, 평신도와 만나는 일반 알현을 처음 도입했다.
재임 시 6대륙을 모두 방문하는 등 선교와 외교 면에서도 교황의 지평을 확대하고, 호화로운 보석이 장식된 교황관을 쓰길 거부하는 등 검소한 성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교황 바오로 6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평소에 드러내며 재위 중에 손수 바오로 6세를 성인으로 추대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바오로 6세는 그러나 재위 당시 낙태와 인공 피임을 금지하는 가톨릭의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서구 사회의 반발을 낳기도 했다.
로메로 대주교는 1970년대 후반 엘살바도르에서 우파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사회적 약자 보호와 정의 구현에 앞장서다 1980년 미사 집전 도중 암살당한 지 38년 만에 가톨릭 성인 지위에 오른다.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는 '해방신학'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은 가톨릭 보수파와 엘살바도르 우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적인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월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독재 정권의 억압에 맞서 가난한 사람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 편에 섰던 성직자는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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