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압박에 '경제 제재' 거부도 먼저 언급 주목
의혹 확산에 "유언비어 징역 5년" 입단속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의혹에 정면 대응에 나섰다.
그가 지난 2일 오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한 전후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초기에 사우디 정부는 '일부 반(反)사우디 언론의 거짓 여론전' 정도로 치부하려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사건이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면서 사우디 정부의 기획 암살설이 급속히 확산하자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역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외무부는 14일 낸 성명에서 "아랍, 이슬람권의 지도국인 사우디는 역사적으로 중동과 국제사회의 안정과 안보를 확립하는 데 앞장섰다"며 "사우디는 이런 우리의 기여를 헐뜯고 위협하는 어떤 시도도 전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우디를 깎아내리는 어떠한 행태라도 더 크게 갚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는 자국을 위협하는 '시도'의 예로 정치적 압력, 가짜 의혹 제기와 함께 경제 제재를 언급해 주목된다.
서방의 중요한 에너지원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해 온 '석유 왕국' 사우디가 자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가능성을 먼저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장면이다.
이번 암살 의혹을 둘러싸고 우방인 미국과 유럽까지 진상을 밝히라고 압박하는 데다 일부 서방언론에서 인권 탄압을 이유로 사우디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을 사우디도 무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사우디의 경제력은 세계 경제에 영향력이 크고 필수적이다"라며 "우리의 경제는 (제재나 위협이 아니라) 오직 세계 경기에 의해서 영향받는다"고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사우디가 자국의 경제력을 거론한 것은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자 서방의 주요 투자자로서 위상을 새삼 부각해 자국에 일방적으로 집중되는 비판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동시에 이번 암살 의혹이 정치적 갈등과 외교 분쟁에 그치지 않고 투자, 교역 등 경제 분야까지 미칠 수 있는 후폭풍도 미리 차단하려는 뜻도 엿보인다.
사우디는 탈(脫) 석유 시대를 대비해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투자금 수백 조 원이 필요한 대규모 관광 단지, 초대형 신도시 사업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당장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를 세계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해야 한다.
사우디 경제, 사회 구조의 체질을 바꾸는 이런 대형 사업은 실세 왕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가 강하게 부인하는데도 언론 보도를 통해 카슈끄지의 암살 의혹이 기정사실로 기울어지면서 외국의 투자와 협력에 차질이 빚어질 조짐이 보인다.
이는 곧 차기 왕권을 물려받아야 할 무함마드 왕세자의 권위와 장악력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투자 심리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주가도 사우디를 둘러싼 부정적인 기류를 그대로 나타냈다. 사우디 주가지수(타다울)는 14일 장중 7%까지 폭락했다.
사우디 검찰은 14일 유언비어나 가짜 뉴스를 생산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유포하면 최고 징역 5년과 벌금 300만 리얄(약 9억원)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사우디 검찰은 카슈끄지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자국 왕실을 겨냥해 최근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암살 의혹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이런 처벌 수위가 새로울 게 없지만 사우디 검찰은 이를 다시 상기함으로써 '입단속'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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