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틀러스 前 라트비아 대통령 "한반도 통일 의지에 감동"

입력 2018-10-15 14:08  

[인터뷰] 자틀러스 前 라트비아 대통령 "한반도 통일 의지에 감동"
국제교류재단 초청 방한…"도라산역·임진각에 생동감…통일 정말 원한다고 느껴"
"양국, 지배당하면서도 민족성·언어 잃지 않았다… IT·문화·차세대 교류 기대"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분단 후 70년이 지났음에도 통일에 대한 굳은 의지를 느껴 감동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닮은 점이 많은 양국 간 협력관계가 앞으로 더 확대되길 바랍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한 발디스 자틀러스 전 라트비아 대통령은 15일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소감에 대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는데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꼭 평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틀러스 전 대통령은 방한 기간 외교부와 국회를 찾아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정착 분위기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한국외국어대·경희대·국민대를 찾아 라트비아 대학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정형외과 의사 출신으로 국립외상학 정형외과 병원장과 이사장직을 13년간 수행하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라트비아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퇴임 후 라트비아 개혁당을 창당해 국회의원 및 국가안보위원회 의장(2011-2014)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외적으로 외교 친선 사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음은 자틀러스 전 대통령과 일문일답.

-- 방한 기간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 경기도 파주의 도라산역·임진각과 비무장지대 등을 둘러보았는데 한국인이 통일을 정말로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라산역은 최북단에 있는 마지막역인데 철로가 비무장지대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장 철조망이 걷히고 통일이 눈앞에 온 상황이 아님에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 서독을 방문해 둘러본 베를린 장벽과 그 주변은 도시 한가운데 황폐한 사막 같았다. 그런데 휴전선을 앞에 둔 도라산역과 임진각의 분위기는 생동감이 넘쳤다. 분단에 대처하는 자세와 통일을 위해 오랜 세월 인내해 온 것을 보면서 한국의 저력을 실감했다.
-- 이번 한국 방문의 성과는.
▲ 한국과 라트비아 간 상호 협력 확대의 가능성을 엿봤다. 두 나라는 근대사가 비슷하고 IT 강국이라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귀국하면 양국이 서로 윈-윈 할 방안을 모색하고 교류가 확대되도록 힘쓸 계획이다.
-- 양국 역사의 어떤 점이 닮았나.
▲ 한국은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라트비아는 50여 년(1940∼1991)간 소련의 지배하에 놓여있었다. 그런데도 두 나라는 민족성과 고유의 언어를 잃지 않았다. 또 지배를 당했던 역사를 잊지 않고 있으며 지배했던 국가가 인접해있기 때문에 교류를 이어가며 미래지향적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이 닮았다.
-- 한국인에게는 라트비아는 아직 생소한 나라인데.
▲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있는 라트비아는 190여만 명의 소국이지만 인도유럽어족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언어인 라티비어어를 사용하며 전통문화를 잘 지켜왔다. 국토의 70%가 숲이고 농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 친환경을 중시한다. 국민 대부분이 모국어 외에 영어·불어·독일어·러시아어 가운데 2개 이상을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로 글로벌화돼있다.
또 남녀 성 평등이 일상에 배어 있다. 정치 분야에서는 여성 총리와 장관이 수시로 나오며 지난 7일 치른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의 31%가 여성이다. 독립기념일에는 모든 종교지도자가 한데 모여서 함께 예배를 볼 정도로 종교적 관용성이 높고 치안도 좋은 것이 장점이다.
수도 리가의 공항에서는 유럽의 모든 주요 도시로 이동할 수 있어 EU 경제권 진출이 용이하다. 무역의 70%를 EU 국가와 하며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 한-라트비아 간 교류·협력을 기대하는 분야는.
▲ 우선 문화교류가 늘어나야 한다. 양국은 이제 서로에게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데 있어 문화교류만 한 것이 없다. 라트비아는 오페라 등 클래식 문화가 오래됐다. 한국은 클래식 신흥 강국이라 할 만큼 유럽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들이 많다. 양국 간 클래식 분야에서부터 교류가 늘어나면 좋겠다.
두 번째는 대학 간 교류 확대다. 이번에 한국외국어대·경희대·국민대를 방문해 라트비아 대학과의 교환학생 사업 등을 논의했다. 청년 간 교류가 늘어나면 미래에 자연스럽게 우호 관계가 깊어질 것으로 본다. 한국외국어대에 발트-라트비아어과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한국은 북해연안 국가들과의 교류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IT 분야 협력이다. 한국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IT 선진국이고 라트비아는 유럽국가 중 IT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다. 지금까지 수많은 해외 출장을 다녔는데 유일하게 한국이 와이파이 등 인터넷 사용에 불편함이 없었다. 라트비아는 마을 단위의 지역공동체마다 초고속인터넷망이 설치돼 있다. 얼마 전에는 5세대(5G) 통신의 주파수도 경매할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 투자를 하고 있다.

-- 의사로 살다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 라트비아는 연립정권이 대통령을 지명하고 의회에서 투표로 뽑는다. 라트비아의 제일 큰 병원을 오랫동안 이끌면서 국민의 신뢰를 쌓아온 덕분에 제의를 받았다. 의사와 대통령 업무는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타인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하고, 인내심이 필요하며, 모든 정보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업무와 관련해서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2007년 당시 라트비아는 '올리가스'(정치 협잡꾼)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외과적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라 대통령직 출마를 받아들였고 의회의 승인을 거쳐서 4년간 국정을 이끌었다. 재임 기간 유럽발 금융위기를 잘 극복했고 원칙을 중시해 올라가스가 발붙일 수 없도록 만들었다.
-- 평소 한국에 대해 접한 것이 있었다면.
▲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라트비아한국대사관 리가분관에서 한식·국악·K팝 등 다양한 한국문화 행사를 여는데 재임 시절 참석했다가 김치를 먹어보고 팬이 됐다. 이번에 본고장에 와서 먹어본 김치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극소수지만 라트비아에도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고 지인 중에도 있다. 패션 디자이너와 의과대학 제자인데 고려인 3세인 이들은 한국에 가본 적이 없고 한국말도 못하지만 한국계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 놀라웠다.
wakar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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