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종목 컴파운드서 비공인 세계신기록 세우며 5관왕
(임실=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대회 첫 5관왕에 4개의 세계 신기록.
전국체육대회 최우수선수(MVP)급 성적이지만 MVP 후보에 오르기는커녕 소속 시·도의 종합 성적에도 기여할 수 없다.
정식종목이 아닌 시범종목 양궁 컴파운드에서 얻은 성적이기 때문이다.
이 화려한 성적표의 주인공인 소채원(21·현대모비스)은 "국내 대회에선 '잘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에 국제 대회보다 부담감이 더 컸는데 잘 마치게 돼 다행"이라며 웃었다.
일반 활인 리커브와 달리 활 끝에 도르래가 달린 반(反) 기계식 활을 사용하는 컴파운드 종목은 아직 국내에 선수가 많지 않아 전국체전에서는 계속 시범종목 처지다.
리커브와 똑같이 거리별 경기와 개인·단체전을 치르고 입상자에게 메달도 주지만 시·도의 점수로는 환산되지 못한다.
소채원은 50m와 60m 경기에서 잇따라 세계 신기록을 고쳐 썼다. 거리별 점수를 합산한 개인싱글종합 점수와 팀의 거리별 점수를 더한 단체종합 점수 역시 세계 신기록이다.
그러나 시범종목인 탓에 세계 기록으로 공인되지 못했다. 세계 신기록이 나오면 시·도의 점수에 300% 가산점을 주지만 시범종목이라 그마저도 없다.
소채원은 이번 세계 신기록으로 얻은 것은 '기쁨'과 '명예' 정도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는 "단체전 기록은 있지만 개인 세계 신기록은 처음이라 기뻤는데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서 아쉬웠다"면서도 "다음을 기약해야겠다"며 말했다.
소채원은 50m·60m·70m 거리별 금메달에 이어 16일 개인전, 17일 단체전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5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30m에서 36발을 모두 10점에 맞히고도 X10 1개가 모자라 은메달이 된 것 외에는 출전한 전 종목에서 우승한 것이다.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하고, 지난달 월드컵 파이널에서 우리나라 컴파운드 사상 첫 메달인 동메달을 거머쥔 데 이어 이번 시즌 최고의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소채원은 "요즘 점점 기량이 올라가고 있다"며 "작년에 처음 대표팀 들어와 경기하면서 아쉬운 점이 많아서 열심히 준비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소채원은 뒤늦게 활을 잡았다. 중학교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양궁을 접한 후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부'가 됐다.
공부 잘하던 딸이 갑자기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걱정이 많았을 법도 한데 소채원은 "어머니께서 운동이 힘들까봐 걱정하시긴 했지만 처음부터 많이 응원해주셨다"며 "지금도 부담되지 않게 몰래 경기 결과 지켜보시다가 성적이 좋으면 먼저 축하해주신다"고 했다.
소채원은 진로를 바꿀 만큼 컴파운드의 매력에 빠졌지만 선수층이 두꺼운 리커브와 달리 국내 컴파운드의 저변은 여전히 좁다.
전국체전 정식종목이 아니다 보니 지원도 적어 컴파운드를 하는 중고등학교가 많지 않고, 배출되는 선수가 없어 전국체전에서도 시범종목에 머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소채원은 "컴파운드는 해외에선 리커브보다 시합도 많고 규모도 크다. 일반인들이 취미로 접하기에도 더 수월하다"며 "실수 없이 항상 10점을 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컴파운드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체전과 다음 달 전국종합선수권대회 이후에 쉴 틈도 없이 실내양궁월드컵 시즌을 시작해야 하는 소채원은 "실력을 잘 갈고 닦아서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꼭 개인전 우승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