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파시즘'서 세계적 파시즘 확산 우려…"북한의 파시즘은 가족사업"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DPRK(북한)는 세속적인 ISIS(이슬람국가:극단주의 무장조직)이다. 북한의 존재는 권력이 너무나 소수에게, 너무나 오랫동안 집중됐을 때 발생하는 비극의 추가적인 증거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외교수장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부 장관이 새 저서 '파시즘'을 통해 내린 북한에 대한 정의다.
올브라이트는 또 김일성을 북한에서 '신과 다름없는 존재'로 규정하면서 "신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북한의 파시즘은 가족 사업"이라고 강조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까지 3대째 이어지는 세습 독재가 파시즘일 뿐 아니라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DPRK 파시즘이 인간성에 끼친 손실은 그 어떤 과학적 측정 기준도 넘어선다. 북한 사람들은 정권에 대한 이념적 충성도가 그들이 어디에서 얼마나 잘살지,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만성 영양실조에 걸린 전체 인구의 40%에 속하게 될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다"고 비판한다.
현재 벌어지는 북핵 협상에 대한 전망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은이 거래를 거부하기보다 타결하려고 시도한다면 군부의 더 큰 반발과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까 의심된다. 북한은 비둘기들이 살기에 좋은 서식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안으로부터 정권 붕괴가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큰가? 정보 혁명은 DPRK에 완전히 퍼지지는 않았지만 뚫고는 들어갔다. 망명자들의 증언이 정확하다면 북한 사람들은 더는 정부가 하는 얘기들의 많은 부분을 믿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김정은이 정말 세 살 때 총 쏘는 법을 익혔고 다섯 살에 말을 탔는지 의심한다. 공식 임금은 너무 낮아서 많은 사람은 자신이 훔칠 수 있는 것을 훔치는 것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고, 이는 복종이라는 문화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올브라이트는 이런 '냉소주의의 확산'이 북한 내부에서 조직화한 반대 세력 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그는 또 커리어 외교관답게 "그렇다고 외교에 희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진실로 협상의 문은 반드시 언제나 열어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대북 선제 타격이 고려됐다는 정보도 전했다. 올브라이트는 "보고가 정확하다면 그는 선제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주장했다.
이미 잘 알려진 얘기이긴 하지만 지난 2000년 최초로 북한을 직접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독대한 회고담과 북폭까지 고려한 당시 심각했던 상황도 다시 한번 소개한다.
올브라이트는 다음 달 15일 출간 예정인 이 책의 한국판 서문을 새롭게 썼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을 때 내가 처음 했던 결정사항 중 하나는 한반도 관련 내용을 반드시 포함해야겠다는 것"이라며 "세계가 한반도를 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파시즘의 가장 해악적인 요소들을 잔뜩 품고 있는 북한의 시스템(극단적인 민족주의, 중앙집권화된 권력, 인권 유린, 무력 의존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북 협상과 관련해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거짓말과 허황한 약속들을 경계해야만 한다"면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그들의 군사력을 예전보다 더 위협적으로 만들었을 뿐, 북한은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심각한 위험을 야기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한과 미국을 포함한 그 동맹국들은 북한이 좀 더 이성적인 접근법을 추구한다면 화해의 문을 열어두어야 하겠지만, 그들의 공격성을 억제하는 데도 확고한 입장을 취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문제도 주요하게 다루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파시즘의 현대사를 되돌아보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게 목적이다.
무솔리니를 시작으로 히틀러, 스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우고 차베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블라디미르 푸틴 등 파시스트 지도자와 독재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파시즘의 야만성을 경고한다.
이들 파시스트 독재자 중에서도 최악으로 꼽힌 인물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그는 "마두로, 에르도안, 푸틴, 오르반, 두테르테, 그리고 이 가운데 유일하게 진성 파시스트(true fascist)의 전형인 김정은은 서로 제각각이지만 그들을 모두 연결하는 고리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수십 년의 투쟁과 희생으로 생긴 민주적 규범을 지지하는 공감대로부터 그들의 지지자들을 떼어놓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런데 올브라이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흥미롭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계열의 반(反)트럼프 인사인 올브라이트는 트럼프를 직접 파시스트로 규정하진 않지만, 사실상 비슷한 반열로 보는 수준의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는 트럼프를 "현대 미국 역사상 첫 번째 반민주적 대통령"으로 부른다.
올브라이트는 "왜 우리는 다시 한번 파시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한 가지 이유를 말하자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라며 "파시즘을 거의 치유된 과거의 상처라고 한다면, 트럼프를 백악관에 들여보낸 것은 마치 상처에 댔던 붕대를 벗겨버리고 딱지를 뜯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주장했다.
체코 출신 유대계 이민자인 올브라이트는 지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제64대 미 국무부 장관을 지냈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도 활동하는 등 외교력을 인정받았으며, 민주당 내에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했다.
책은 올해 출간 이후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한국판 번역에는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인기를 끈 타일러 라쉬가 참여했다.
인간희극 펴냄. 타일러 라쉬·김정호 옮김. 336쪽. 1만8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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