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사진전시재단, '인간가족' 견줄만한 대규모 사진전
회퍼·왕칭송·정연두 등 300여점 통해 다채로운 풍경 포착
(과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벌집으로 모여든 벌떼일까, 물살에 휩쓸리는 말미잘일까.
17일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 1층에 내걸린 시릴 포체 '군중' 연작은 주인공이 군중이다. 사람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모여든 데다, 저마다 붉고 노란 천을 두른 탓에 거대한 물결 혹은 불길이 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멀리서 보면, 사진보다는 흘러내릴 듯한 마티에르 유화에 더 가깝다.
이곳은 어디일까.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모였을까.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은 작가는 그러한 구체적인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이 사진에서 혼돈이 아니라 잘 조직된 대중 현상을 본다. 사진은 도시가 이러한 대중 행동에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현대미술관)
MMCA 과천이 동시대 문명의 다양한 풍경을 조망하는 국제 사진전을 연다.
현대미술관과 스위스 사진전시재단이 마련한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은 32개국 135명 작가가 촬영한 300여점이 나왔다.
칸디다 회퍼, 토마스 슈트루스, 올리보 바르비에리, 에드워드 버틴스키, 왕칭송, 정연두, 노순택, 한성필 등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작가 작업을 엄선했다.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 이후 처음으로 동시대 문명을 포괄적으로 조망하는 세계적 규모 사진전이라는 게 현대미술관 설명이다.
전시는 8개 섹션 '벌집(Hive)',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 '흐름(Flow)', '설득(Persuasion)', '통제(Control)', '파열(Rupture)', '탈출(Escape)', '다음(Next)'으로 구성됐다. 사진 수십만장을 골라내는 작업을 거치면서 자연히 이러한 분류가 생겼다는 것이 기획자들 설명이다.
은행과 교도소, 공사장, 학교 등 다양한 무대를 배경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일하고 노는지, 어떻게 협력하고 경쟁하는지, 어떻게 사랑하고 경쟁하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해석한 결과물이다.
윌리엄 유잉 큐레이터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눈앞에서 매일 매시간 만들어지는 지구 문명을 다룬 전시"라면서 "문명은 잠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문명은 집합적 노력의 결과물로 이전 세대 성취 위에 단을 하나씩 더 올리는 것"이라는 유잉 큐레이터 설명에 공감하게 된다.
집단 현실을 비춘 이번 전시는 사진이 고독한 예술이라는 인식을 깨뜨린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유잉은 "사진작가가 존재하려면 카메라 제조업체부터 렌즈 제조업체, 비행기 조종사, 드론 운전자, 편집자, 에이전트, 갤러리스트, 출판업자, 큐레이터까지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라면서 "사진은 진정한 집합예술"이라고 밝혔다.
이채로운 풍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단순한 눈요깃거리 전시는 아니다. 전시장을 둘러볼수록, 우리 시대를 좀 더 멀리서 조망하는 일이 미래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어느 현실 인식이 승리할지 말하는 일은 사진가 몫이 아니지만, 그들은 세상의 현 상황을 펼쳐 우리가 세상을 어느 쪽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지 생각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책 '문명' 서문)
전시는 바르토메우 마리 현대미술관장이 2015년말 취임 직후부터 사진전시재단 등과 접촉하며 준비했다. 중국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프랑스 마르세유 국립문명박물관을 비롯한 약 10개 기관을 돌며 이어진다.
한국 전시는 내년 2월 17일까지. 문의 ☎ 02-2188-6000.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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