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마리 "'한국미술 세계화' 미흡했다? 잘 모르고 하는 말"

입력 2018-10-18 07:16   수정 2018-10-18 08:56

떠나는 마리 "'한국미술 세계화' 미흡했다? 잘 모르고 하는 말"
임기 끝나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인터뷰…"3년 내 제대로 된 평가는 불가능"
"작가 '수출'만 말고 해외 관심을 한국·국현으로 끌어오는 것 중요"
"관장직, 너무 많은 시간 행정 투입…임기 7년 이상 보장돼야"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3년 내내 그를 따라다닌 '첫 외국인 국립현대미술관장' 수식어는 부담이었을까, 동력이었을까.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부담으로 느껴본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미술의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면서 느낀 즐거움이 일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그는 '예상보다 이른' 퇴장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임기 만료를 앞둔 마리 관장을 12일 서울관 앞마당에서 만났다. 정장 양복에 넥타이를 고수하던 그는 처음으로 짙은 청바지에 가벼운 재킷 차림으로 나타났다. 과거 인터뷰에서 정중하지만 건조한 단어를 주로 늘어놓았던 것과 달리, 보다 직설적인 표현이 나왔다.
스페인 출신인 마리 관장은 베니스비엔날레(베네치아비엔날레) 스페인관 큐레이터,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관장,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 회장 등을 거쳐 2015년 12월 한국 미술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기관 수장이 됐다. 그는 연임 희망 의사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지난달 중순 연임 불가를 통보받으면서 12월 초 임기를 마무리하게 됐다.
이를 두고 첫 외국인 관장에게 기대한 '한국미술 세계화' 성과가 미흡한 탓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연임 불가 이유는 본부(문화체육관광부)에 물어보셔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아끼던 마리 관장도 이 부분만큼은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한 이야기는 외국 유수 미술기관의 작동 원리를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이들 기관은 통상 3∼5년 앞서 기획을 하기에, 이들과 협의 과정에만 수년이 소요됩니다. 우리가 지난 3년간 해온 것보다 더 빠를 수는 없습니다."
취임 직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규모 사진전 '문명'이 18일 과천관을 시작으로 중국·프랑스·호주 등 각국을 순회하며, 현대미술관이 국제 다원예술 주요 무대로 부상하는 등 성과가 이제 가시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리 관장은 한국미술의 물 건너 진출을 외치는 이들을 향해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미술 세계화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외국 미술관 관심을 한국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한국작가들을 외국에서 소개하는 건 '수출' 밖에 안 되기에, 더 많은 외국 전문가와 기관이 우리를 주목하게 해야 합니다."
현대미술관장은 창작자를 포함해 국내 미술계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마리 관장은 "관장으로서 너무 많은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야 하는 점 때문에 전시나 작가 스튜디오를 더 자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매우 큰 조직이고 시스템상 수반되는 임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는 미술이나 작가와 직접 연관이 없는 경우도 있었어요."
"3년간 차곡차곡 심은 씨앗들이 내년이나 더 먼 미래에 큰 나무로 자라나길 바란다"는 마리 관장은 핵심 '씨앗'으로 연구기획출판팀 신설을 들었다. "연구출판은 미술관이 직접 지적 담론을 생산하기 위한 기본 토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게 그 신조다.

그는 "물론 아직도 영문 카탈로그가 제대로 출간되지 못하거나 아예 출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라면서 "해외에 유통돼야 각국에 한국미술 콘텐츠를 정확하고 적절한 텍스트로 전달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아쉽다"고 설명했다.
개인전에 치중하지 않고 특정 시대나 주제를 조망하는 주제전을 강화한 점, 작가 성비 균형을 유지한 점, 검열 논란이 없었던 점 등이 그가 꼽은 또 다른 성과다. 마리 관장 임기 동안 현대미술관이 다양한 문화·레저 행사를 끌어들여 좀 더 '열린 공간'으로 바뀐 것은 급증한 관람객 수가 보여준다.
마리 관장은 지난 6월 현대미술관 중기 프로그램을 비롯한 운영혁신 계획을 야심 차게 발표했다. 이 때문에 연임을 점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 계획이 유지되겠느냐는 물음에 "모든 관장에게 자유는 보장돼 있고 제 후임자가 족쇄로 느끼지 않았으면 하지만, 전시는 중장기 관점에서 기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연장 선상에서 관장 임기 또한 최소 5∼7년은 돼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을 이끈 니컬러스 세로타는 27년간 관장으로 재직했다. 엘리자베스 맥그레고르 호주현대미술관장도 18년 넘게 일했다.
"3년 주기로 관장이 자주 교체되는 건 끔찍한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술관이 약해지고 직원들도 방향성을 잃기 쉽습니다. 연속성과 안정성이 담보돼 미술관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면, 이는 관장 성공이 아니라 미술관 성공, 한국 문화예술계 전반 성공입니다."
마리 관장은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관장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결과를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라면서 "그래서 저를 향한 일부 평가가 진실로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21세기형 미술관이지만 운영은 20세기형에 가까운' 서울관 공간 활용도 극대화 등 '미완의 꿈'을 한참 열거하던 마리 관장은 "이제는 많이 내려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이러한 기회를 얻었다는 점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한국미술을 위해 제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를 바란다"는 덕담으로 마무리됐다.
마리 관장은 향후 거취를 묻는 마지막 물음에 "다른 전문적인 기회를 찾으려 한다"고 답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한식을 즐기는 그는 "언젠가는 한국 레스토랑을 열 계획"이라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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