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혁의 야구세상] '거물은 불편해'…달라진 감독 선호도

입력 2018-10-19 06:00  

[천병혁의 야구세상] '거물은 불편해'…달라진 감독 선호도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2011년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창단 작업을 했던 한 관계자는 모기업인 엔씨소프트 임원으로부터 초대 감독 후보군을 추려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신생팀인 만큼 젊은 선수들을 2∼3년간 충실히 지도해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스타일의 감독이 좋겠냐, 아니면 첫해부터 어느 정도 성적을 내면서 홍보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유명 지도자가 좋을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의 제안을 모기업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해 6월 두산 베어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김경문 전 감독이 2개월여 만에 NC 초대 감독을 맡게 된 과정도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감독 선임은 모기업 최고위층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보안 사안이기 때문이다.
초대 사령탑을 맡아 6년 이상 '공룡군단'을 이끌던 김경문 감독이 지난 6월 경질되고 대행 체제로 운영되던 NC가 17일 제2대 감독을 발표했다.
NC 두 번째 감독에는 그동안 야구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동욱 수비코치가 발탁됐다.
구단 외부에서는 스타 출신이 차기 감독으로 내정됐다, 외국인 감독이 부임한다 등의 소문이 나돌았지만 NC는 창단 초기부터 1,2군을 오가며 선수들을 지도한 이동욱 코치를 차기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야구 팬들에게는 의외의 인사로 비칠 수도 있지만, NC의 감독 선임은 최근 KBO리그의 달라진 감독 선호도를 반영하고 있다.
프로야구단 감독 자리는 오랜 기간 유명 야구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른바 '야구계의 三金'으로 불리는 김응용·김성근·김인식 등 경력이 풍부한 지도자나 스타플레이어 출신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 감독은 구단 프런트와 마찰을 겪는 일이 빈번했다.
성적이 좋을 때야 문제없지만, 순위가 하락하는 순간 감독과 프런트의 갈등이 되풀이되곤 했다.
특히 감독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일본야구보다 단장의 역할이 더 큰 미국 메이저리그를 접한 국내 구단 고위층이 선수단 운영에 관여하는 일이 생기면서 현장 감독과 심한 언쟁을 벌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NC 구단은 이동욱 신임 감독을 발표한 뒤 '데이터 야구'를 적극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 시절에는 프런트가 추구하는 '데이터 야구'가 선수단에 대한 간섭이자 감독 권한에 대한 월권으로 여겨졌다.
자존심 강한 일부 감독들은 프런트가 선수단 운영에 관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스타 감독을 영입한 몇몇 구단은 이런 갈등을 겪다 보니 '거물 감독'에 대한 피로감이 쌓였다.



'스타 출신 감독을 모셔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사실상 처음 깨트린 구단은 넥센 히어로즈다.
회삿돈을 횡령해 실형을 선고받은 이장석 전 대표이사가 전권을 행사한 넥센 구단은 초대 감독으로 LG 트윈스의 우승을 이끌었던 이광환 전 감독을 영입했고 이어 특급투수 출신의 김시진 전 감독을 데려왔다.
그러나 2012시즌이 끝난 뒤 선수나 코치 시절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염경엽(현 SK 단장) 당시 주루 코치를 사령탑으로 깜짝 임명했다.
한마디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런데도 넥센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점차 강팀으로 성장하자 일각에서는 다각적인 트레이드와 신인 드래프트 등을 주도했던 이장석 사장 등 프런트의 야구일까, 감독의 야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나오기도 했다.
넥센은 염 감독 후임으로도 역시 선수 시절 무명이었던 장정석 운영팀장을 감독으로 내세워 다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넥센의 성공을 보면서 최근 타 구단들도 굳이 스타 출신 감독만을 고집하지 않고 있다.
현재 10개 구단 감독들을 살펴봐도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소수이고 과거 감독들보다 선수나 지도자 경력이 처지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최근 각 구단이 선수 출신을 단장으로 임명하면서 스타 출신 감독을 영입할 필요성도 줄었다.
야구인 출신 단장이라면 당연히 선수단 운영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단장과 감독의 공조가 이뤄져야만 야구단이 잡음 없이 돌아갈 수 있다.
단장을 필두로 프런트의 역할이 커지고 감독의 권한이 예전보다 축소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KBO리그가 겪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선수단 전체를 총괄하는 '단장(General Manager)'과 현장에서 선수들을 이끌고 경기하는 '감독(Field Manager)'이 역할과 권한 분담은 물론 책임까지 함께 져야 할 것이다.
shoeles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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