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얼굴들 해체, 한 페이지가 넘어갔네요"
10주년 신곡 '우리, 자연사 하자' 발매…11월 9일 기념공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2008년 밴드 장기하와얼굴들이 '달이 차오른다, 가자'로 데뷔할 때였다. 무대에서 보컬보다 시선을 잡아끈 두 사람(?)이 있었다. 아니다. 사람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 선글라스를 쓰고 무표정한 얼굴로 팔을 휘젓는 그들은 마네킹이나 외계인에 가까워 보였다. 정체불명 듀오 미미시스터즈 이야기다.
이름, 나이,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신비주의 뒤에 꼭꼭 숨은 그들. 데뷔 10주년을 맞아 조금은 무장해제가 됐나 보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미미시스터즈는 본명과 학번, 생업은 물론 내밀한 가족 이야기까지 호탕하게 털어놨다. 다만 팬들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자연인 미미들의 신상은 기자만 알고 있기로 했다.
오는 26일 데뷔 10주년 기념 신곡 '우리, 자연사 하자'를 내놓는 미미들에게 제목이 진짜 고령에 의한 사망(自然死)이란 뜻이냐고 물었다. "맞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작은 이랬다. 작은 미미는 지난해 인도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인도로 이주했다. 올해 잠깐 귀국했을 때 가까운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호상(好喪)은 아니었다. 큰 미미와 육개장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오래 살다 자연스럽게 죽자고.
올해 5월 작사에 착수했고, 밴드 몽구스의 보컬 몬구가 작곡·편곡을 했으며 만화가 그림왕양치기가 비주얼아트를 맡아 싱글이 완성됐다. 영어, 일본어로도 번안해 불렀다. 세계 40여개 뮤직스토어에 음원이 유통된다.
"자연스럽게 죽는 게 제일 좋은 거잖아요. 죽음에도 종류가 많더라고요. 자살, 병사, 사고사, 과로사….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노래를 쓰려고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하는 3시간짜리 교육도 들었어요. 힘든 분들이 이 노래를 듣고 빵 터지면 좋겠어요. '그래, 얘네도 살고 10주년까지 오는데 나도 힘내자, 정 힘들면 퇴사하자! 퇴사가 짱이다!' 하면서요."(큰 미미)
"노래 제목을 말했을 때 불편해하는 분도 계셨어요. 그러나 저희는 절대로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친구를 잃은 적 있기에 꼭 필요한 작업이라 여겼지요. 이건 '죽자'가 아니라 '살자'를 말하는 노래거든요."(작은 미미)
죽음을 주제로 대화하다 보니 '밴드의 자연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했다. 한때 세상을 들썩이던 밴드가 추문이나 불화로 깨지고(사고사), 인기가 떨어져 절로 잠잠해지는(병사) 경우도 있다. 미미들은 '밴드는 해체될지언정 멤버들이 음악을 놓지 않는다면 자연스러운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마침 미미시스터즈가 몸담았던 장기하와얼굴들은 최근 해체를 선언했다. 미미들은 2010년 밴드를 탈퇴해 1집 '미안하지만…이건 전설이 될 거야'(2011), 2집 '어머, 사람 잘못 보셨어요'(2014), 디지털 싱글 '주름파티'(2017)까지 냈지만 친정의 해체 소식에 가슴이 아린 듯했다.
"어젯밤 꿈에 하세가와 요헤이(장기하와얼굴들 기타) 씨가 나왔어요. 저희 1집 프로듀서이기도 한데, 좀처럼 꿈에 나오는 일은 없었거든요.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구나' 싶더라고요. 10년의 페이지가 넘어갔으니 또 다른 페이지가 오지 않을까요."(큰 미미)
"미미시스터즈 10주년 공연에 옛 영상을 쓰려면 그 친구들 허락도 받아야 하잖아요.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솔직히 저희 데면데면한 사이거든요(웃음). 농담으로라도 '한 번 봐야지' 이런 말 절대 안 하는데, 장기하가 '언제 한국 오냐, 보자' 하더라고요. 이런 일 때문이었구나 싶네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미미들은 신비주의 껍질을 벗고 있었다.
큰 미미는 지난달 직장을 그만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출신인 그는 일상에선 대기업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공연장의 기획팀장이었다. 같은 대학 영상원 영화과를 나온 작은 미미는 본명을 걸고 꾸준히 작품을 쓴다. 오랜 친구라는 둘의 일상을 전해 들으니, 이제야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에 두 미미는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엔 현실의 저와 무대 위의 미미간 격차가 너무 커서 분리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미미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미미'였거든요. 미미행성에서 날아와 아직 땅에 정착하지 못한…. 이제는 조금 섞여가는 것 같아요."(작은 미미)
"자연인 나와 미미 사이에 교집합이 생긴 거죠. 사실 오랜 팬들은 저희 얼굴 다 알아요. 그래도 선글라스 벗고 있을 때 어디서 만나면 아는 척하지 말라고 하면, 팬들이 지켜줘요. 서로 일종의 놀이를 하는 거예요. 그런 재미가 있어야 엔도르핀이 생기는 거잖아요."(큰 미미)
이들을 성숙하게 한 건 선배 '시스터즈'들이었다. 한국 최초의 공식 걸그룹인 김시스터즈(1953년 데뷔), 1960년대 슈퍼 걸그룹 이시스터즈(1961년 데뷔)를 인터뷰해 헌정 콘서트, 연극을 진행하며 깨달았다고 한다.
"이시스터즈를 처음 찾아봤을 때 작은 미미는 막 출산한 상태였어요. 우리는 신비주의 콘셉트인데, 현실적인 문제를 맞닥뜨리니 어쩔 줄 몰랐죠. 그런데 이시스터즈는 세 분이 임신, 출산을 반복하며 10년 넘게 활동하셨더라고요. 배부른 상태로 '날씬한 아가씨끼리'라는 노래를 하면서요. 50년 전에 이미 세련된 방식을 찾아내셨던 거죠."(작은 미미)
"지금도 참 고우세요. 선배님들처럼 나이들 수 있다면, 80∼90세까지 미미시스터즈를 하면 정말 멋질 것 같아요. 꼭 라이브 많이 하고 페스티벌 많이 서야만 활동이 아니잖아요. 해체하지 않고 팬들과 SNS로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늙어간다면, 잘 나이들 수 있을 것 같아요."(큰 미미)
미미시스터즈는 아직도 세계적인 히트곡이 나오길 꿈꾼다고 했다. 도전해본 장르도 많다. '배시시'에선 포크, '낮술'에선 컨트리, '내 말이 그 말이었잖아요'에선 복고록, '잠복근무'에선 하드코어, '다이너마이트 소녀'에선 개러지, '내껀데'에선 트로트, '주름파티'에선 신스팝, '우주여행'에선 사이키델릭까지 안 해본 게 드물다.
큰 미미는 "정작 히트곡이 생기면 다 소모했단 생각에 허무해질 수도 있다"며 "언젠가는 히트곡을 낼 거란 기대가 음악을 계속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미미시스터즈는 신곡 발매를 기념해 오는 11월 9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성산동 문화비축기지 T2 공연장에서 디너 토크쇼 '우리, 자연사하자'를 연다. 이시스터즈의 김희선,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의 저자 그림왕양치기, 가수 프롬이 게스트로 함께한다.
미미들은 "미미만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유쾌하게 얘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김시스터즈부터 트와이스까지 1950∼2010년대를 아우르는 걸그룹 메들리까지 준비됐으니 기대해달라"고 귀띔했다.
티켓은 텀블벅에서 예매할 수 있다. 전석 6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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