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향연·매력적인 캐릭터…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입력 2018-10-21 13:56  

부의 향연·매력적인 캐릭터…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사자가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 프랑스 영웅 나폴레옹이 1803년 중국을 가리키면서 한 말이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지만, 이런 거창한 문구로 시작한다. 아시아 혹은 중국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이 작품은 중국계 미국인 존 추 감독이 연출하고 주·조연을 모두 동양인 배우들로 기용해 만든 영화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100% 동양인들로만 캐스팅해 만든 작품은 1993년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 만이다.

영화는 중국계 뉴요커인 레이철(콘스탄스 우)이 남자친구 닉(헨리 골딩)의 '절친' 결혼식이 열리는 싱가포르에 갔다가 닉이 싱가포르 최고 갑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린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레이철이 닉의 부유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펼쳐지는 '부의 향연'이다. 싱가포르행 일등석 비행기 안 모습은 맛보기다. 예비 신랑과 신부는 바다 한가운데 대형 화물선을 띄우고, 섬 하나를 통째 빌려 각각 초호화 파티를 연다.
극 중 2천억 원대로 설정된 닉 할머니의 저택과 400억 원대 결혼식 장면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온갖 명품을 휘감고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쯤은 돼야 부자'라고 뽐낸다. '평범한' 레이철 눈에는 스케일이나 모든 면에서 '미친' 부자들로 보일 수밖에 없다.

2013년 케빈 콴이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올해 프렌차이즈가 아닌 단독 영화로는 유일하게 북미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적으로 거둔 이익만 2억3천만 달러로, 제작비 3천만 달러(약 340억원)의 7배가 넘는다. 지난 10년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중에서 최고 흥행기록으로, 속편 제작도 예약된 상태다.
부를 단순히 과시하는 데 그쳤다면 미국에서 그렇게 큰 호응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와 캐릭터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신데렐라 스토리에 캔디형 여주인공, 고압적인 어머니는 국내 '막장' 드라마의 주된 소재다. 뻔한 이야기에 예측 가능한 결말인데도 '현실 공감' 캐릭터들과 가족애와 같은 훈훈한 주제가 마음을 열게 한다.

홀어머니와 뉴욕에 사는 레이철은 평소 소박하게 살던 남자친구 닉이 사실은 싱가포르 최고 갑부의 아들이자, 싱가포르 여성들 사이에서 최고 신랑감이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상류층 또래 여성들은 레이철을 시기·질투하고, '꽃뱀' 취급하며 괴롭힌다.
닉의 어머니 엘레노어 영(량쯔충) 역시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는 마찬가지. 레이철은 미국 유명 대학 최연소 경제학과 교수일 정도로 똑똑하고 유능한 여성이지만, 엘레노어 눈에는 그저 가난한 이민자 가정 2세이자, 정체성이 모호한 미국인일 뿐이다.
이들의 지능적인 '왕따'에 레이철은 몹시 괴로워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지혜롭게 상황을 타개한다. 자존심과 연인까지 모두 지켜낸 레이철 캐릭터는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닉은 비슷한 집안 여성을 만나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어머니와 레이철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사랑을 택한다. 영화는 동서양 문화와 사고를 모두 받아들인 젊은 세대와 부와 전통을 대물림하려는 기성세대 간 갈등과 화해 등을 담으며 세대를 아우른다.

개성 강한 조연들도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준다. 한국계 여성 래퍼인 아콰피나는 금발 가발을 쓴 레이철 친구로 등장해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인 량쯔충(楊紫瓊.양자경)은 닉 어머니 엘레노어 영으로 출연해 악역이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극 중심을 잡는다.
싱가포르의 아름다운 경관과 마리나베이 샌즈 등 관광지가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끊임없이 '한번 놀러 오라'고 유혹한다.
인구 570만명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만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목도 재미있다.
뉴욕 한 식당에서 닉이 레이철에게 싱가포르행을 제안할 때, 이를 목격한 여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자 순식간에 전파돼 싱가포르에 있는 닉 어머니 귀에까지 실시간 전해지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아시아 파워'를 보여줬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시아 전체 인구 중 손에 꼽을 만한 중국인 갑부 이야기인 데다, 대사 역시 모두 영어로 이뤄졌다.
그런데도 백인 일색 할리우드 영화에 다양성을 불어넣은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동양인을 전형적인 캐릭터로도 그리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영화를 보다 보면 배우들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굳이 의식하지 않게 된다.
최근 큰 인기를 끈 '서치'와 더불어 재미있는 이야기와 사랑, 가족과 같은 보편적 주제는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