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과 것' 사이 존재하는 수많은 생각 '집의 시간들'

입력 2018-10-22 08:28  

사는 '곳과 것' 사이 존재하는 수많은 생각 '집의 시간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SH공사의 장기전세주택 'SHIFT' 광고 카피다. 집을 사고파는 상품이 아닌 거주공간으로 바라보며 많은 공감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집의 의미가 '사는 곳'에 그칠까? 한국인은 자산의 70%가 부동산에 묶여있고, 다른 무엇보다 집값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광고 카피와 달리 집은 '사는 곳'인 동시에 '사는 것'이기도 한 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특히, 서울 재건축 아파트는 '사는 곳'과 '사는 것'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장이다. '사는 곳'의 가치를 중시하는 쪽은 '아직 살만한데 집을 떠나 어딜 가느냐'고 주장하는 반면, '사는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쪽은 개발이익에 방점을 둔다.
영화 '집의 시간들'은 철거·이주를 앞둔 한국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가 사라지기 전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기록한 이인규 작가와 주택 내·외부를 영상으로 담는 '가정방문' 프로젝트를 진행한 '라야' 감독이 공동기획했다.
두 사람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 게시판 등에 전단을 붙여 촬영 신청자를 모집했고, '라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가가호호 방문했다. 촬영은 2016년 5월부터 8월까지 이뤄졌다.



재건축을 앞둔 집을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둔촌주공아파트는 5천930세대로 구성됐다. 겉에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5천930채 서로 다른 집이 존재하듯 재건축에 대한 주민 생각도 저마다 달랐다.
둔촌주공아파트를 고향으로 여기며 이곳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저 떠나보내기 아쉽다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언제까지 수도관에서 녹물이 나오고 지하주차장도 없는 곳에 살아야 하느냐는 주민도 있다. 지금보다 편히 살고 재산 가치도 누리고 싶다는 목소리도 물론 존재한다.
이처럼 생각은 제각각이지만, 머지않아 둔촌주공아파트가 사라지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인식만은 모두의 뇌리에 자리 잡은 듯하다.
특이한 점은 주민 모습이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그들의 목소리만 담담하게 전한다. 곧 사라지게 될 집과 작별을 준비하는 주민 목소리는 마치 둔촌주공아파트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각을 자극할 만한 그림이나 특별한 편집기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용히 흘러가는 풍경처럼 둔촌주공아파트를 관조한다. 마치 한 권의 사진집을 보는 듯하다. 애초 둔촌주공아파트 모습을 기록하기 위한 프로젝트에서 이 영화가 시작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촬영을 마친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둔촌주공아파트 이주가 시작됐으며, 현재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넓은 부지 면적과 비교하면 용적률이 높지 않아 1990년대 말부터 재건축 이야기가 나왔으니 거의 20년 만에 재건축이 시작된 것이다.
재건축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둔촌주공아파트는 약 1만2천 세대 미니 신도시급 아파트 단지로 다시 태어난다.
인근 잠실시영아파트가 재건축 후 '파크리오'로 이름이 바뀐 것처럼 '둔촌주공'이라는 이름도 다른 무엇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그 이름과 함께 둔촌주공아파트 이야기가 여기서 끝날지, 새집으로 돌아온 주민들이 둔촌주공아파트 이야기를 이어갈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25일 개봉. 전체 관람가.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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