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인 조엘 맥스위니 '서울국제작가축제' 내한, 신해욱 시인과 대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시인들이나 작가들이 꼭 페미니즘에 관해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페미니즘 입장에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중심으로 문화를 재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18 서울국제작가축제' 참가차 내한한 미국 시인 조엘 맥스위니(42)는 지난 20일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이번 축제를 함께하는 신해욱(44) 시인과 먼저 가진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맥스위니는 시, 산문, 운문 희곡, 비평서 등 열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유명 출판사 '액션 북스'(Action Books)의 공동대표다. 이 출판사는 세계 여러 나라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미국에 소개했으며, 한국 시인 김혜순, 김이듬의 작품도 출간해 한국 시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해욱은 1998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해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귤곰팡이 나이트', 산문집 '비성년열전', '일인용 책'을 냈다.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 기획위원인 문학평론가 양경언 주재로 이뤄진 한미 두 여성 시인의 대담에서 페미니즘은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맥스위니는 "남성성 자체가 아니라 남성 중심 헤게모니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 체계를 재조정하는 일이고 여성이 아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해욱은 "페미니즘이 작가가 무엇에 대해 쓸지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고 본다"며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쓰지 않을 때, 다른 쪽 상상력의 출구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것이 지닌 힘이 작가들에게 분명히 작용한다. '노웨어, 나우 히어'(Nowhere, Now Here)인 이번 축제 주제와도 연결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작품 안에서 성 정체성이 작가의 생물학적 성별을 떠나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맥스위니는 "나는 글을 쓰면서 내 젠더(성 정체성)를 새로 발견했다. 내 작품 주인공은 남성이고 늘 악역인 경우가 많은데,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시인으로서 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연극을 쓴 적 있는데, 쓰면서 '아, 이 사람이 바로 나구나'라고 느꼈다. 그런데 연극작업에서만 그렇고, 시를 쓸 때는 젠더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해욱은 "내 경우, 시를 쓸 때 이야기를 시에 많이 넣지 않고, 사람에 대한 디테일을 많이 넣지 않는 편이라 이런 무표식 자체가 남자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남자로 읽히는 오해가 불편한 반면, 여성의 성별적 표식을 도드라지게 의식해서 넣는 것도 왜곡됐다고 생각한다. 표식, 기호 때문에 젠더 기울기는 달라질 수 있어 작품을 쓸 때 고민하는 편이다. 내가 여성이라는 점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과잉되지 않게 표현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한국어와 싸우는 부분 중 하나다"라고 답했다.
맥스위니는 자신이 미국에 알린 김혜순·김이듬을 비롯해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신해욱 등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김혜순, 김이듬의 작품은 다른 언어로 된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미국 독자에게 현재 읽히고 있고 영향력을 발휘한다. 액션 북스에서 처음 소개했지만, 이제 다른 출판사도 이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새로운 '유산'(legacy)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끌어냈다고 생각해서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혜순 시인의 시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최돈미 시인(번역가)으로부터 처음 작품을 소개받았고, 김혜순 작품이 주는 어두운 면에 있는 대안성에 빠져들었습니다. 김혜순 시인을 중심에 두고 나만의 한국문학 지도가 완성되고 있습니다. 김혜순 시인을 통해 이상(李箱)도 소개받았습니다. 여성 시인들의 작품뿐 아니라 이상의 작품세계까지 알 수 있어 좋았어요. 지금은 (최돈미 번역가와 함께) 이상 작품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대신 김혜순, 라울 주리타(칠레 시인) 등을 미국 문인 지형도의 중앙에 두면 어떨까 상상하고, 그런 상상을 통해 그 주변에 가장 어울리는 행성, 별들이 누굴까 생각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 듭니다. 신해욱 시인처럼 젊은 시인도 어울릴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피라미드 구조의 문학에서 벗어나는 기분이라 즐겁습니다."
그는 문학 번역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번역은 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을 더 멋지게 보이게도 하고, 안 보이게도 하기 때문인데요. 저는 그것이 번역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 또한 자본주의 바깥 영역이죠. 재무제표처럼 딱 맞아 떨어지지 않고, 어떤 것은 자연히 잃는 부분이 많고 어떤 것은 얻는 부분이 더 많기도 하죠. 신해욱 시인의 시도 좋은 번역가를 만났다고 생각해요."
두 시인은 23일 오후 서울국제작가축제 주요 행사인 '작가들의 수다'에 참석해 다른 시인 김근, 김현과 함께 '우리가 눈을 뜨고 보지 못한 사실- 젠더'를 주제로 얘기한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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