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업' 일깨우는 미야베 미유키 신작 '비탄의 문'

입력 2018-10-23 13:40   수정 2018-10-23 15:32

말의 '업' 일깨우는 미야베 미유키 신작 '비탄의 문'
무분별한 인터넷 발화의 위험성 드러내…사회파 미스터리에 판타지 녹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고이고 쌓인 말의 무게는 언젠간 그 말을 쓴 사람을 변화시켜. 말은 그런 거야. 어떤 형태로 꺼내놓든 절대로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어. 반드시 자신도 영향을 받지. 닉네임을 몇 개씩 번갈아 쓰며 아무리 교묘하게 정체를 감춰도, 글을 쓴 사람은 그게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아. 스스로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일본 추리소설 거장 미야베 미유키(58) 신작 소설 '비탄의 문'(1·2, 문학동네 펴냄)에 나오는 말이다.
인터넷상에서 익명 뒤에 숨어 마구잡이로 내뱉은 말이 그 상대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남긴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미미 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는 미야베 미유키는 그간 범죄·추리소설 형식을 빌려 사회 여러 문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인터넷 공간의 폭력성과 사이버 범죄 양상을 화두로 삼아 묵직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대학 생활이 지루하기만 한 신입생 '고타로'는 학교 선배 '마키' 권유로 신생 IT 회사 '쿠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인터넷에 나도는 범죄 흔적을 찾아내 감시하고, 필요에 따라 수사 당국에 협력하는 '사이버 패트롤'이 쿠마의 주 업무다. 고타로는 어느 날 집을 나서다 친한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손녀 '미카'가 학교에서 인터넷 관련된 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걱정을 듣는다. 회사에서 동료 '모리나가' 도움을 얻어 알아보니 미카는 인터넷상에서 또래 여자아이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한편, 모리나가는 신주쿠 일대에서 노숙자들이 잇따라 실종된다는 정보를 확인하겠다며 현장을 찾아다니다 갑자기 실종된다. 고타로는 그의 행적을 좇던 끝에 몇 년째 빈 신주쿠 한 유령 빌딩에 잠입한다. 이곳에서 전직 형사 '쓰즈키'와 맞닥뜨린다. 스즈키 역시 이 건물 옥상의 조각상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소문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이들은 밤을 새우며 기다린 끝에 검은 날개를 달고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존재 '가라'를 만나게 된다.
고타로는 현실의 존재라고는 믿기 어려운 가라의 정체에 관해 인터넷에서 알아보다 특이한 소녀 '유리코'의 방문을 받게 된다. 유리코는 가라가 다른 영역에서 온 존재라며 추적을 멈추라고 충고한다. 또 '이야기가 처음으로 시작되는 땅'과 '말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땅'이라는 두 영역에 관해 들려준다.
"거대한 죄업의 대륜 한 쌍이 돌아가는 곳이지. 그 대륜이 회전하며 이야기를 풀어내고 또 되감아. 모든 이야기를 환원시키는 시작의 땅이야."
"죄, 죄업의 대륜이라니, 잘못을 뜻하는 그 죄 말이야?"/ "그래 이야기는 인간이 뱉어내고 인간이 쌓는 업이니까."/"아까 이야기는 나쁜 게 아니라고 했잖아!"/ "나쁘지 않아도 업은 업이야. 죄는 죄고." (1권 447∼448쪽)
현실을 초월한 듯한 이 이야기는 혼란스럽기만 하고, 고타로는 가라의 존재를 잊으려 노력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가 너무나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이 연쇄살인마 손에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가라를 불러내 거래를 시도한다.
작가는 2015년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같은 소설가는 말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니 제가 하는 말이 곧 행동인 셈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그 정도를 넘어 오직 말이 그 사람의 존재를 이루죠. 일기장에 혼자 부정적인 말을 써도 자기 안에는 남기 마련인데, 인터넷에 쌓인 수많은 말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어요. 온라인 사회의 규칙을 지키고 안 지키고를 떠나서, 사실 인터넷을 즐겨 사용하고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말을 사랑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로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상적인 유저의 모습이겠죠."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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