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10개 외국어→영어·중국어·베트남어만 시험 지원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운전면허증 발급을 주관하는 도로교통공단이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번역본 학과(필기) 시험의 외국어 수를 최근 대폭 축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이주여성이나 화물차 운전자 등 운전면허증이 꼭 필요한 외국인이 국내에 적지 않아 이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도로교통공단은 올해 8월부터 기존 10개 외국어로 치를 수 있는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3개 외국어로 축소했다.
외국인의 경우 기존에는 영어·중국어·베트남어·일본어·몽골어·러시아어·타갈로그어·캄보디아어·인도네시아어·태국어 등으로 번역된 필기시험을 치르면 국내에서 운전면허를 딸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8월 1일부터는 영어·중국어·베트남어를 제외한 나머지 7개 외국어 필기시험은 없어졌다.
도로교통공단은 폐지된 언어의 필기시험 응시자가 많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24일 "외국인 운전면허 시험 응시자 중 영어·중국어·베트남어 필기 응시자가 대부분"이라며 "나머지 7개 외국어 시험 응시자는 극소수여서 폐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폐지된 언어 국가의 대사관에 필기시험 번역본 감수 등을 의뢰했으나 모두 거부 의사를 밝힌 상황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나 중동 지역 출신 외국인 노동자는 국내에서 운전을 직접 해야 하는데도 이번 외국어 번역본 축소 방침에 따라 운전면허증을 따는 게 쉽지 않게 됐다.
가장 널리 알려진 언어인 영어나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면 차량을 이용해 자녀의 등하교를 도우려는 결혼이주여성이나 중고차 수출단지에서 일하는 중동인은 국내 운전면허 필기시험조차 응시할 수 없다.
지난해 영어·중국어·베트남어를 제외한 나머지 7개 외국어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치른 외국인은 6천800여명이나 됐다. 전체 응시자 4만9천800여명 가운데 13%가량이어서 적지 않은 수였다.
올해도 7월까지 외국어 필기시험 응시자 2만770여명 가운데 13%가량인 2천854명이 나머지 7개 언어 응시자였다.
이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자국인을 섭외해 필기시험 답안을 알려주는 부정행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영어를 모르는 아랍인들이 국내에서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이용한 부정행위로 운전면허증을 땄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A(31)씨 등 시리아인 5명은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시 마포구 서부운전면허 필기시험장에서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이용해 문제가 적힌 컴퓨터 화면을 시험장 밖에 있던 다른 시리아인 B(37)씨에게 보여준 뒤 답안을 전달받았다.
옷에 휴대전화를 감추고 시험장에 들어간 이들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영상통화로 영어로 된 시험문제를 보여주면 B씨가 답을 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영어를 잘한 B씨는 이들의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대신 풀어주고 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등 시리아인 5명은 모두 인천 한 중고차수출단지에서 일해 운전면허증이 꼭 필요했으나 영어를 잘하지 못해 금품을 주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당시 경찰은 아랍어로 된 필기시험도 도입해 달라고 도로교통공단 측에 권고했고 공단도 이를 검토했으나 실제 시행하진 않았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외국인의 한국어 운전면허 시험을 돕기 위해 올해 연말쯤 새로 개발한 교재를 배포할 계획"이라면서도 "현재로서는 폐지된 외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필기시험 대책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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