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 통합 대신 분열 촉발한 정운찬 KBO 총재의 '소신'

입력 2018-10-24 10:31   수정 2018-10-24 10:38

야구계 통합 대신 분열 촉발한 정운찬 KBO 총재의 '소신'
'운명공동체' 선동열 감독 끌어안기보다 '선 긋기'
전임 감독제에는 책임 있는 발언보다 사견 제시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힌 정운찬 KBO 총재의 '소신'이 야구팬들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정 총재는 23일 국회 문체위의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5개 체육 단체 국정감사에서 일반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했다.
정 총재는 소신 있게 의견을 밝혔지만, 야구계의 정리된 목소리였다기보다 사견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많았다.
야구팬들의 비판을 받은 발언은 크게 두 가지다.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 전임 감독이 집에서 TV를 보고 선수를 뽑는 게 옳으냐"는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물음에 정 총재는 "선 감독의 불찰"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정 총재는 "마치 경제학자가 현장에 가지 않고 지표만 분석해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고 경제학자인 자신과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
선 감독은 지난 10일 국회 문체위 국감 증인으로 나가 전국 5개 구장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선수들의 기량을 파악하고자 집에서 TV로 야구를 본다고 답했다.
야구장에 직접 가서 보는 것도 중요하나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비교·평가하기 위해 TV로 보는 게 낫다는 답변이었다.
정 총재는 또 국가대표 전임 감독제와 대회별 감독제의 차이를 묻는 말에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국제대회가 잦지 않거나 대표 상비군이 없다면 전임 감독은 필요치 않다"며 사실상 전임 감독제에 반대 뜻을 표했다.
두 답변 모두 한국프로야구를 관장하는 KBO 총재의 발언으론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총재의 현안 인식 능력과 판단력, 책임감을 의심하는 이도 늘고 있다.



KBO 총재는 한국프로야구의 수장이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위임을 받아 프로야구 선수들이 출전하는 국가대표 야구대표팀을 운영하는 KBO의 최고 운영책임자라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 선수 선발에서 불거진 불공정 선발 논란으로 한국 야구는 큰 질타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을 산 끝에 KBO는 국회 피감기관이 아님에도 국회의원에게 자료를 제출하고, 선동열 대표팀 감독과 정 총재는 국감장 증인대에 섰다.
이처럼 정 총재는 야구대표팀 논란에서 비켜갈 수 없는 주요 책임자이지만, 정작 23일 국감장에선 총재의 책임감보단 일반 야구팬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야구 지식을 설파하는 데 주력한 인상을 남겼다.
정 총재는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한 몫이라고 선 감독의 소신을 인정하면서도 TV로 선수를 뽑는 건 옳지 않았다고 말해 사실상 선 감독을 직격했다.
보기에 따라 정 총재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사실상 한 배를 탄 선 감독과 선을 그은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이다.
병역 특례 선수 선발 논란이 쟁점인 상황에서 선 감독이 TV로 경기를 봤느냐는 것은 사실상 곁가지에 불과한 얘기다.
KBO와 선 감독이 내부에서 이런 논란에 답변을 정리할 수 있다.

정 총재는 대신 국감에서 투명한 야구대표 선발을 재차 확약함으로써 대표팀을 둘러싼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했지만, 선 감독의 직무 수행에 공개로 문제를 제기해 또 다른 논란을 촉발했다.
전임 감독과 관련한 정 총재의 인식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야구대표팀은 대회별 감독제를 운영하다가 구본능 전 총재 재임 시절인 지난해 안정적인 대표팀 운영과 효율적인 대표 선발을 위해 처음으로 전임 감독제를 도입하고 선동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8년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 12, 2020년 도쿄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가 해마다 열리는 점을 고려했다.
현역 프로팀 감독은 대표팀 감독 겸업에 난색을 표명하고, '재야인사'들도 권한과 기간을 보장하지 않는 대회별 감독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는 이유도 전임감독제 도입의 원인이 됐다.
프리미어 12대회엔 도쿄올림픽 출전권이 걸렸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선 야구가 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열린다.
우리나라는 야구의 마지막 올림픽이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9전 전승의 금메달 신화를 이룬 '디펜딩 챔피언'이다.



그간 국제대회에서 야구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 시너지 효과로 KBO리그는 흥행 가도를 달렸다.
전임 감독제 도입엔 이런 배경이 있지만, 정 총재는 "국제대회가 자주 열리지 않으니 전임 감독은 필요 없다"는 사견만 밝혔다.
정 총재는 일본의 경우 연령대별 대표팀이 있어 자주 경기를 벌이기에 전임 감독제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일본은 각급 국가대표와 여자대표팀 등 야구대표팀을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통합 브랜드로 묶어 운영한다. 통합 홈페이지도 있다.
각급 대표팀의 사령탑은 다르지만, 일정 기간 책임과 권한을 주고 대표팀을 운영하도록 하는 전임 감독제를 시행한다.
지난해 일본 A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은 2020년까지 팀을 이끈다.
이나바 감독 역시 선 감독과 마찬가지로 대회가 없을 땐 프로야구 선수들을 파악하고 검증한다.
또 정규리그 직전 또는 정규리그 직후 열리는 평가전과 이벤트 경기에서만 일본 대표팀을 이끌어 사실상 국제대회가 없다면 1년 동안 팀을 지휘하는 경기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도 '사무라이 재팬'이 전임 감독을 유지하는 건 안정적인 대표팀 운영과 선수의 꾸준한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선임한 감독이 아니어서', '내 재임 시절 도입한 전임 감독제가 아니어서'라는 뉘앙스를 남긴 건 KBO 총재의 발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cany990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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