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보안대, 80년 5·18때 정보조작의 핵심 역할

입력 2018-10-24 16:30  

505보안대, 80년 5·18때 정보조작의 핵심 역할
5·18재단 주관 505보안부대 1차 집담회서 노영기 조선대 교수 주장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의 분신처럼 움직이며 정보조작 등 핵심 역할을 한 505보안부대의 구체적인 행적이 드러났다.
노영기 조선대학교 교수는 24일 광주 서구 5·18기념재단에서 열린 '505보안부대 1차 집담회' 발제자로 나와 "505보안대를 중심으로 5·18 초기 시위대 강경 진압과 정보조작 등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노 교수에 따르면 광주 기무부대로 불린 505보안부대는 동구 금남로에 분실을 두고 신군부 핵심 세력이었던 보안사령부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주로 광주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안에 대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해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정보를 조작하거나 왜곡했다는 것이 노 교수의 주장이다.
노 교수는 "505보안부대는 1980년 5월 19일 계엄군의 최초 발포에 대해 '특정 데모 세력이 계엄군의 소행으로 선동하기 위한 지능적 수법'이라고 정보를 조작했다"며 "시위대를 특정 배후조직이 있는 조직적이고 기동력 있는 데모대라고 왜곡 조작했다"고 설명했다.
'5·18은 김대중의 추종세력이 선동하고 깡패가 동원됐다'는 거짓 정보도 505부대의 작품이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6월 초순엔 보안과장이 주도한 사체검안위원회가 폭도와 비폭도로 나눠 희생자들의 사인을 수정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이재우 505보안부대장과 서의남 대공과장, 최예섭 보안사령부 기조실장 등 당시 핵심 인사들의 구체적인 역할과 행적도 공개했다.
이 부대장은 병상에서도 광주의 상황을 진두지휘했고, 서 과장은 수사 실무책임자로 광주시내 첩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최 기조실장은 수집된 첩보를 보안사령부 참모장과 공유하며 직접적인 다리 역할을 했다.
광주일고 출신인 홍석률 치안본부 조정관은 광주의 친척 집에 머물면서 시내에 잠복, 정보 수집 등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노 교수는 "홍 조정관은 당시 시위대의 상황을 '폭도들의 약탈과 강제 동원 등으로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싸여 지쳐있고 계엄군이 폭도를 소탕하지 않아 원성이 자자하다'는 거짓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정문영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보안부대령의 변천사를 연구해 발표했다.
i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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