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국정조사·사법농단 특별재판부 논의서 '균형추' 역할
"정국 교착 해소에 도움" 평가…"결국 '들러리'" 시각도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가운데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균형추' 같은 선택이 정국의 향배를 가를 기세다.
이들 중소정당이 독자적 주도권을 갖기는 어렵지만, 거대 양당 사이에서 설득력 있는 공론에 따라 움직이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국의 중심축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요즘 들어 여야 원내대표 3∼4명이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에서 이들 야 3당의 '실사구시적' 선택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있으면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없고, 김 원내대표가 있으면 홍 원내대표가 없는 회견장에서 바른미래당 김관영·평화당 장병완·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나란히 나와 한쪽으로 힘을 실어주는 식이다.
대표적 사례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와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공정한 재판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 등이었다.
먼저 한국당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의 채용비리 의혹을 집중 조명한 데 이어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통틀어 강도 높은 국정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한국당과 손잡은 바른미래당, 평화당은 지난 22일 국회에 국정조사 요구서를 공동 제출했고, 정의당도 일부 한국당 의원이 연루된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까지 함께 조사할 것을 전제로 국조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과 감사원 감사 청구가 우선이라는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일제히 요구하는 야 4당에 이례적으로 포위된 형국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4일 전국 성인 남녀 5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국정조사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59.9%에 달했다.
공공기관 고용세습 및 채용비리 의혹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야당들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붙을 전망이다.
한편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서는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
여야 4당은 25일 사법농단 의혹의 공정한 심리를 위해선 이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현 재판부에 판결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특별재판부 설치에 공감했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의 '행동대장'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시점이어서 이들의 주장이 더 큰 관심을 끌었다.
법원이 26일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사법농단 의혹의 심각성이 거듭 부각될 것이고, 영장을 기각할 경우 영장전담판사의 공정성마저 의심받을 것이기 때문에 야 3당 입장에선 '국민 눈높이'를 고려한 최선책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과 한국당은 주요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 서로를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야 3당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도 공을 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야 3당의 몸값이 높아진 셈이다.
이는 거대 양당 어느 한쪽도 원내 과반을 점하지 못한 20대 국회의 여소야대 다당제 구도 속에서 자연스러운 사안별 공조, 나아가 일종의 '협치' 양태로도 평가될 수 있다.
지난해 9월 당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부결이나 12월 정부 예산안 처리 등의 과정에서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로 존재감을 뽐낸 사례의 연장선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다당제 구조하에서 소(小) 정당들이 정국 교착을 해소하고 대립을 막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의회 운영에는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더 낫고, 그러기 위해서 선거제도 개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바른미래당은 한국당, 평화당과 정의당은 민주당의 '들러리' 역할에서 각각 벗어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특히 지난 7월 공동교섭단체 붕괴 후 비교섭단체로 돌아온 평화당과 정의당은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 등의 무대에서 예전과 같은 실력을 발휘하는 데 애를 먹은 것이 사실이다.
한 중소정당 핵심 관계자는 "오히려 중대 국면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야합해 야 3당을 배제할 수도 있다"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선 결국 거대 양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과연 민심 그대로의 국회라는 대의에 동참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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