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 출신 판사, 내부망에 '절대주의 국가' 언급한 책 인용…우회 비판
"위헌심판 제청 신청하면 재판 안 돼"…"특별재판부로 불공정 논란 불식" 의견도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정치권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법을 정기국회 내 처리키로 합의하자 일선 판사들은 대체로 '위헌적 발상'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건을 무작위로 배당하는 것이 재판 독립의 중요 원칙 중 하나인데, 특별재판부는 이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것이다.
법원장 출신의 A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5일 오후 법원 내부 전산망에 '특별재판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정치권의 특별재판부 설치 추진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A 부장판사는 글에서 차병직 변호사 등이 쓴 '지금 다시, 헌법'이란 제목의 책을 소개하며 "절대주의 국가에서처럼 국왕이 순간의 기분에 따라 담당 법관을 정하거나, 이미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법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버리거나, 심지어 사건을 자신이 직접 결정할 때는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잘못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벌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지우고 또 어떤 방법으로 형벌을 가하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제도는 우리 법관들의 문제이지만 그 전에 우리 국민의 문제"라는 말도 남겼다. 특별재판부 구성이 전체 사법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고, 그 피해는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수도권 법원의 B 부장판사는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건 배당은 무작위성이 재판 독립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 정치권은 특별한 사건을 놓고 재판부를 딱 찍어서 구성하겠다는 것"이라며 "외부 기관에 의해 재판부를 구성하는 건 헌법상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특별재판부를 구성했다가 피고인들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면 재판부의 위헌성 논란 때문에 실질적으로 재판 진행이 안 될 것"이라며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지법에 사무분담위원회가 구성된 만큼 내부 논의를 통해서도 충분히 공정한 재판부에 사건을 배당할 수 있는데 이런 절차를 다 생략하고 정치적 쟁점화만 시키는 것 아닌가"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재경지법의 C 판사는 "이 사람은 이래서 못 믿고 저 사람은 저래서 못 믿겠다며 특별재판부를 구성한다는데, 이런 위헌적인 일이 어디 있느냐"라고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앞으로 민감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특별재판부를 만들겠다는 것이냐"라며 "이는 전체적인 법원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일각에선 그간 법원의 영장 기각 등을 두고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 나온 만큼 이참에 특별재판부를 설치해 불공정 논란을 불식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지방의 D 판사는 "특별재판부에서 관련자들에게 어떤 선고를 내리든 그땐 (정치권도) 할 말이 없을 것 아닌가"라고 말했고, 수도권의 E 판사 역시 "결국 재판은 판사가 하는 것이니 누가 하더라도 옳은 재판을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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