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우리동네] 효자 정조 발길 닿은 행궁 어디였나

입력 2018-11-03 11:00  

[쉿! 우리동네] 효자 정조 발길 닿은 행궁 어디였나
식사하거나 유숙하던 곳…과천·의왕에서도 머물러
일제강점기 대부분 훼손

(수원=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대표적인 관광명소 수원 화성행궁은 조선 시대 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년)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수원 화산 현륭원으로 가는 원행길에 잠시 들러 머물던 곳이다.

조선 시대 행궁(行宮·임금이 지방에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화성행궁은 군사들이 훈련하거나 관리들이 행정업무를 볼 수 있었을 만큼 규모도 제일 컸다.
서울 창덕궁에서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곳까지 거리는 약 60㎞. 정조는 재위 기간에 13번 수원 원행에 나섰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곳이 흔적도 남지 않게 됐지만, 경기도에는 화성행궁 말고도 정조가 원행하는 동안 들렀던 행궁들이 더 있었다.

◇ 아버지도 경유한 과천행궁…'온온사(穩穩舍)'라 부른 정조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 일대에 있는 '온온사'는 1980년 6월 경기도지정유형문화재가 됐다.
임용훈 과천향토사연구회 향토사에 따르면 편안한 집이란 뜻의 온온사는 조선 시대 과천현 관아에 딸린 객사(대궐을 향해 예를 지내고 외부에서 온 관리가 숙박하는 장소)였다.

정조 이전 국왕들이 지방으로 거동(온천행·사냥·능행 등)할 때 체류하던 행궁이기도 했다.
기록을 살펴보면 '과천행궁'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성종(재위 1469∼1494년) 때다.
정조도 과천로를 통한 원행에서 주로 이곳에서 쉬거나 묵고 갔다.
1790년 원행 중에는 "경치가 좋고 쉬어가기 편하다"며 과천 객사에 '온온사'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는 특히 과천행궁을 좋아했는데, 사도세자가 온천욕을 하러 온양에 가면서 이곳 과천로를 경유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과천행궁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를 만난 백성들을 수소문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사실 현재의 온온사 건물은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형태는 아니다.
일제가 펼친 문화 말살 정책으로 훼손됐다가 1986년 12월에 복원됐다.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 객사 건축물 가운데 가장 표준 형태인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객사'를 모방해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졌다.
정확한 행궁(관아지)터는 현재 과천초등학교 자리로 추정된다.
정조는 1797년 원행 때 안산행궁에도 한차례 들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산읍성 관아에 있던 이 행궁도 객사였다. 정조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안산행궁으로 불리게 됐다.
안산행궁은 일본 강점기에 훼손됐으나 최근 조선 시대 객사 모양 등을 토대로 일부 복원됐다.

◇ '과천길' 대신 만든 '시흥길'…지금은 사라진 행궁들

정조의 원행길은 환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원행에 나섰던 1795년을 기점으로 달라진다.
정조는 창덕궁을 출발해 과천행궁을 들러 군포로 진입한 '과천길' 대신 창덕궁에서 시흥행궁과 안양행궁을 거쳐 군포로 들어가는 '시흥길'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과천길은 연로한 어머니와 행렬이 지나가기에 지형이 협소하고 언덕이 많았다. 대신 넓고 평탄한 시흥길이 새로 만들어졌다.
정조는 시흥길을 지나며 시흥행궁과 안양행궁에 머물다 간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들 행궁은 모두 자취를 감춘 상태다.

지난해 12월 금천구청이 발간한 '시흥행궁 복원 및 활용을 위한 학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시흥행궁이 있던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고 산업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행궁은 훼손됐다.
관련 사료가 거의 없다 보니 시흥행궁이 현재 금천구 시흥동 일대에 자리했을 거라는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안양행궁도 안양1번가 상가건물 틈에 '안양행궁지'라는 작은 표지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안양문화원 관계자는 "안양행궁 주변에 큰 기와집이 있어서 사람들이 (행궁을) '대궐터'라고 불렀다고 한다"며 "정확하진 않지만 시흥행궁에 불이 나서 이를 보수하는데 안양행궁 자재를 갖다 쓰면서 행궁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 개발로 훼손될 위기…의왕 '사근행궁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사근행궁은 정조 이전의 왕들도 이용하던 곳이었다.

사근행궁이 있던 사근천 지역은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교통의 요지였다.
현종(재위 1659∼1674)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양 온천을 자주 다녔는데, 이때마다 이곳에 머무른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도 마찬가지였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원행에 나선 1795년에는 사근행궁에서 함께 식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강점기에 의왕면사무소로 사용된 사근행궁은 1937년 3월까지 기와지붕 모습으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원군 일형면과 의왕면이 통합돼 일왕면이 설치되면서 수원에 면사무소가 지어지게 됐다.

이때 사근행궁은 새 면사무소를 짓는데 돈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일왕면협의회 결의를 거쳐 철거됐다.
당시 면협의회 기록을 보면 의원 중 한 명이 "전 의왕면사무소(사근행궁)는 조선 시대 행궁이므로 고적(古蹟)으로 보존하는 게 어떠냐"고 의견을 제시했으나 의장인 면장은 "유지가 곤란하다. 매각 외 방법이 없다"고 반대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사근행궁터에서 기단으로 쓰인 돌과 기와들이 일부 수습됐지만, 이후 방치되다가 인근에 택지가 들어서면서 아예 사라졌다.

현재 의왕시청별관 입구에는 지역유지 모임인 백운회에서 1989년에 세운 사근행궁터비만 남아 이곳에 사근행궁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의왕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박철하 고문은 "1919년 3월 31일 의왕면사무소로 이용되던 사근행궁 앞에서 독립 만세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시의 재개발 계획에 사근행궁터 일부가 새 도로에 포함되는 등 역사의 한 부분이 훼손될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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