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 감독 "남 일처럼 깔깔 웃다가, 문뜩 내 이야기처럼 느꼈으면…"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스'(2016)가 원작이다.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그리스, 중동 등 세계 각국이 원작 판권을 사들여 리메이크했거나 리메이크를 추진 중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스마트폰과 비밀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전 세계 영화 제작자들의 구미를 당겼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리메이크 판권 가격이 원작 판매 가격보다 5~6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원작의 기본 줄기는 오랜만에 한 집에 모인 친구들과 그 부인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휴대전화 통화 내용과 메시지 등을 모두 공개하는 게임을 하면서 각자의 비밀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이재규 감독(48)은 원작 스토리라인을 가져오되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해 '완벽한 타인'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드라마 '다모'(2003), '베토벤 바이러스'(2008), '더 킹 투하츠'(2012) 등 수많은 히트작과 영화 '역린'을 연출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이 감독은 "똑같은 상황에 노출되더라도 각국 사람들의 반응은 문화에 따라 다르다"면서 "현재 한국의 20~40대 모습을 반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한국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 5년 정도 뒤에 각국에서 리메이크한 '완벽한 타인'을 한자리에 모아 영화제를 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원작을 각국이 어떻게 현지화했는지 비교해볼 기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본인이 연출한 영화에 대한 자신감도 반영된 듯 보였다.
'완벽한 타인'에는 보수적이고 원칙적인 변호사 태수(유해진)와 문학에 빠진 그의 아내 수현(염정아), 유명 성형외과 의사 석호(조진웅)와 미모의 정신과 의사 예진(김지수) 부부, 신혼인 레스토랑 사장 준모(이서진)와 수의사 세경(송하윤) 부부 그리고 이혼한 뒤 새 연인을 만난 영배(윤경호)가 등장한다.
이 감독은 "위태위태한 상황에 놓인 상류층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관객들이 처음에는 마치 남의 이야기 보듯 깔깔거리다가 나중에는 '나도 저렇게 살고 있을지도 몰라'라고 극에 몰입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주로 서민 연기를 한 유해진에게 엘리트 변호사 역을 맡겼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적인 이미지를 보여준 이서진은 '단순 무식한' 바람둥이 레스토랑 사장에 캐스팅했다.
그는 "배우들이 기존에 가진 이미지와 간극이 생길 때 극이 더 살아나고 재미를 줄 거로 생각했다"며 "각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러닝타임 내내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호흡을 이끌어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배우들이 실제 친구처럼 대화하고 현장감을 살리는 것이 중요했죠. 그래서 3~4일 정도는 식탁 테이블에 앉아 연극 하듯 리딩 연습을 했고, 세트가 완성된 뒤에는 흐름을 체화할 수 있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극 전체를 리허설했죠. 영화 촬영 때 극 전체를 리허설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선 인물들의 대사가 서로 물리지 않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여러 명의 대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밥 먹고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대사 호흡에서 오는 리듬감을 통해 제한된 공간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정신없이 이야기가 진행되다가도 호흡을 고를 수 있는 극단적인 쉼표 구간도 있고요. 느낌표, 물음표라 할 만한 장면도 담겼죠. 또 극단적인 부감 샷이나 일반적이지 않은 앵글을 통해 인물을 왜곡해서 보여주는 등 꼭 필요한 부분은 공격적인 미장센을 연출했습니다."
감독은 배우 7명에게 골고루 시선을 나눠주지만, 나름의 역할을 맡겼다. "석호와 예진 부부는 일종의 닻이고, 준모는 엄청난 파도를 일으키는 인물이며, 그 안에 태수와 수현 부부가 놓여있는 형국이에요."
극 중 하나씩 드러나는 각자의 비밀은 꽤 강렬하고 자극적인 편이다. 서로 관계는 어긋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감독은 "석호의 이야기에는 제 경험담도 녹아있다"고 귀띔한 뒤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렇게 특수한 상황만은 아니며, 태수 정도의 일탈을 통해 삶의 권태를 위로받는 사람은 주변에 많다"고 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문제를 안고 있고, 대다수 사람이 상처받고 살아가죠. 그런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도덕적으로 나쁜 문제를 모두 덮고 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친한 사람일수록 타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그래서일까. 이 감독은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을 'Intimate Strangers(친밀한 타인)'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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