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5년 미룬 끝에 동일한 결론…행정처-朴정부 뒷거래 정황
뒤늦게 피해자 승소 판결…사법史에 대표적 오점으로 기록될 듯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방현덕 기자 = "피의자는 강제징용 피해 할아버지들과 직접 만났습니까? 대법원이 뒤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할아버지들이 알았습니까?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결론을 바꾸겠다는 계획을 할아버지들도 알았습니까?"
검사가 격앙된 듯한 어조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호되게 몰아세웠다. 임 전 차장은 "검찰이 대법원 재판 구조를 몰라 이러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임 전 차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오간 공방이다.
검사가 지칭한 '할아버지들'은 바로 소송 13년 만에서야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다. 원고 할아버지 4명 중 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 3명이 소송 도중 세상을 떠났다. 30일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원고는 이춘식(94)씨 뿐이다.
이씨는 77년 전인 1941년 17세의 나이로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매일 12시간씩 고체 연료를 용광로에 넣고 용광로에서 나온 철을 가마에 넣는 중노동이었다. 심한 먼지에 어지러움을 겪기 일쑤였고, 용광로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상처를 입고 3개월간 입원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손에 쥔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제철소는 "대신 저축해준다"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해방을 맞은 이씨는 돈을 돌려받기 위해 제철소를 찾았지만, 전후 폐허가 된 공장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기했던 징용의 대가를 되찾기 위해 제철소의 후신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건 60년이 더 지난 2005년 2월에서였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문서가 그해 처음으로 공개되며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 권리가 살아있다는 법적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1·2심 법원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판단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할아버지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2013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시 내용대로 신일본제철이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할아버지들의 감격적인 승소였다.
그러나 신일본제철은 재상고했고,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불과 1년 전 대법원이 한 차례 판단을 내린 만큼 결론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사건임에도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피해자와 유족이 빠른 판단을 촉구해도 대법원의 심리에는 이렇다 할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무려 5년이 무의미하게 흐르며 소송 원고 중 생존자는 1명만 남았다.
쉽게 이해할 수 없던 대법원의 재판 지연은 서울중앙지법 사법 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에 의해 의혹의 단서가 상당수 드러났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고위 간부들이 2013년∼2016년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부 인사를 수차례 만나 강제징용 소송의 재상고심 결과를 '피해자 패소'로 바꾸거나 소송 진행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법원행정처 측은 외교부가 전범 기업의 입장을 반영한 의견서를 제출해주면 이를 빌미로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넘기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2012년 대법 판결을 뒤집는 방안을 정부 측에 직접 제시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를 위해, 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은 물론 판사의 해외공관 파견을 늘리기 위해 이 같은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받는다. 2016년 말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하며 이들의 계획은 중단됐다.
검찰은 이런 재판거래 의혹의 전면에 나선 판사가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이 재판지연 의혹에 연루됐다. 검찰은 구속된 임 전 차장을 상대로 이 같은 재판거래 의혹에 윗선 개입 여부 등을 추궁하고 있다.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5년간 미뤄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을 봉쇄함으로써 지연 전략을 활용한 '재판거래'가 절반쯤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법원은 2012년 처음으로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적어도 여씨 등이 국내에서 소송을 낸 2005년 2월까지는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2005년 1월 한일협정과 관련한 새로운 문서가 공개됐고, 같은 해 8월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법조계에서는 소멸시효가 2015년 이미 완성돼 추가 소송제기가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범기업의 재상고로 사건이 다시 접수된 2013년 대법원이 곧바로 일본의 배상책임을 최종 선언했다면 다른 피해자들도 추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겠지만, 결론이 늦어지는 사이 민법이 정한 소멸시효 10년을 이미 넘겨버렸다는 것이다.
최종 결론이 늦어지면서 징용 피해자들 소송에는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특별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일본 기업의 소멸시효 주장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배척하면서도, 소멸시효가 언제 시작하고 완성됐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2012년 대법원 판결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의 신고건수는 15만 건에 달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소송 당사자가 대부분 세상을 떠났을 뿐 아니라 신규 소송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막고 일본 기업들은 그만큼 배상금을 아끼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춘식 씨 외에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소송은 대법원 2건, 서울고법 1건 등 전국에 10여 건이 계류돼 있다. 이날 판결로 다른 재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 사건들은 결국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의 대표적인 사례로 사법부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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