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38년 전 '광주의 진실'은 아직도 짙은 안개 속이다.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소문만 무성했던 계엄군의 성폭력에 관한 진실의 한 가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참여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31일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총 17건과 연행·구금된 피해자 및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성고문 등 여성 인권침해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5·18 관련 성폭력 행위를 국가 차원에서 조사하고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5·18 때 여성에게 가해진 성폭력과 고문의 실상에 대한 피해자 증언은 올해 초에야 나오기 시작했다. 광주항쟁 당시 가두방송을 했다가 성폭행과 모진 고문을 당했던 김선옥(60) 씨의 용기에서 비롯됐다. 그녀의 증언은 광주 5·18 자유공원 야외광장에서 지난 5월 개막한 '5·18 영창 특별전-스물세 개의 방 이야기'에 담겼다. 광주사람들은 스물세 살의 꽃다운 나이에 군홧발에 짓밟힌 그녀의 삶 속에서 5·18의 상처를 다시 눈물로 보듬어야 했다. 그녀뿐 아니다. 공동조사단 조사에서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가족에게도,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라거나 "스무 살 나이에 인생이 멈춰버렸다"라고 아픔을 전한 피해자도 있었다고 한다. '오월의 악몽'은 이들에게 아직도 진행형이다.
공동조사단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피해자 대다수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군복을 착용한 다수의 군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여고생이 강제로 군용트럭에 실려 가는 모습,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만행을 당한 여성 사체를 목격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위국헌신(爲國獻身)을 본분으로 삼아야 할 군인들이 총부리를 시민에게 겨누는 것도 모자라 연약한 여성들에게 이토록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계엄군에 의해 저질러진 5·18 성폭력은 명백한 국가폭력이다. 공동조사단이 제안한 국가의 사과 표명·재발 방지 약속,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를 위한 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은 당연한 후속 조치다. 더 중요한 것은 5·18 성폭력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공동조사단의 조사보고서는 성폭력의 일부만 확인된 결과물이다. 책임자와 가해자 조사는 첫발도 떼지 못했다. 공동조사단 활동이 5개월로 짧고 강제조사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범죄다. 철저하게 진상이 밝혀지고 가해자와 책임자는 끝까지 추적해서 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공동조사단 활동이 완료됨에 따라 5·18 성폭력 조사는 이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맡게 됐다. 5·18 특별법이 지난 9월 14일부터 시행됐는데도 불구, 진상조사위는 아직 출범조차 하지 않았다. 정당의 진상조사위 위원 추천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야는 합심해서 하루라도 빨리 진상조사위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38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5·18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데다 실체적 진실은 가뭇없이 사라질 처지에 놓여 있다. 미적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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