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의 한인 연방하원의원 진출 박빙승부…지역서 '생활밀착형' 선거운동
영 김 "워싱턴 정파싸움보다 경제에 다들 관심…이민문제엔 목소리 낼 것"
(플라센티아[미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불쑥 얼굴 들이민다고 선뜻 찍어줄까요."
3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북부 도시 플라센티아의 브레아 플라자 쇼핑센터.
아침부터 형형색색의 코스튬(분장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아침 전문 레스토랑에 설치된 행사 장소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때마침 미국 이색 명절 핼러윈이어서 등교하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개성 넘치는 의상을 뽐냈다. 마녀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든 할머니, 꽤 쌀쌀한 날씨에도 등이 훤히 드러나는 원시인 옷에 장난감 돌도끼를 든 중년남성, 어깨에 앵무새 인형을 얹어놓은 젊은 여성도 끼어있다.
'브레아 플라센티아 캐러밴'이라는 이 모임은 주변 지역 부동산 중개사들의 시장 업데이트 네트워크다. 매물정보, 시세를 교환하고 지역 현안까지 폭넓게 의견을 나누는 장이다.
자녀 교육문제부터 나랏일 걱정까지 온갖 주제를 입에 올리는 우리 복덕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들 NRA(미국부동산중개인협회·National Realtor Association) 회원들이다. 총기규제 논란으로 '그 유명한 NRA(미국총기협회)와는 다르다'며 웃었다.
캘리포니아 39선거구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하는 영 김(56·한국명 김영옥) 후보가 등장하자, 모임 참석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다들 이 지역에 오래 산 유권자들이다. 오래도록 안면을 터온 듯 '격한 포옹'을 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영 김은 뉴저지 3선거구의 앤디 김(36) 후보, 펜실베이니아 5선거구의 펄 김(39) 후보와 함께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3명의 한인 후보 중 한 명이다.
공화당 소속인 그는 지난 6월 정글 프라이머리로 불리는 예비선거에서 17명 중 1위로 본선에 진출했고 '로또 거부' 출신의 민주당 길 시스네로스 후보와 박빙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부분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치고 있다. 1~2%포인트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어 승부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영 김 후보는 사회자로부터 건네받은 마이크를 쥐고는 "추가로 세금을 내지 않더라도 이곳에 도로와 인프라를 건설할 사람이 누구냐"라면서 "노벰버 식스(11월 6일 중간선거)"를 외쳤다.
지역 인프라에 관심이 많은 부동산 중개인들의 귀를 한껏 솔깃하게 하는 제안이기도 했다.
그는 남부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며 감세와 일자리 창출을 주요 경제 공약으로 내걸었다.
고교 시절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영 김은 13선의 '지한파' 에드 로이스 의원의 보좌관을 하기 전에 소상공인으로서 '밑바닥 경제'에서 분투한 경험이 있다. 직접 쇼룸을 만들어 의류사업을 한 적도 있고 꽤 성공적일 때도 있었다.
영 김은 워싱턴의 당파 정치가 미국, 그리고 미국 경제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파 싸움을 끝내는 정치를 스스로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페스트 컨트롤(해충박멸) 업자라는 T.에르난데스는 "지역을 잘 알고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그런 대표자를 원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트럼프 행정부 정책이나 민주·공화 양당 판세, 선거판을 달군 증오범죄, 캐러밴과 출생 시민권 논란으로 달아오른 이민문제보다 자신들의 발등에 떨어진 지역 경제 문제에 훨씬 더 관심을 보였다.
영 김 후보는 "여기 온 유권자들이 '밭'이라고 보면 된다. 부동산 중개 일을 하시는 분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발이 넓은 건 마찬가지"라면서 "3~4년 전부터 모임에 꾸준히 나오면서 얼굴을 익혔다. 하루아침에 캠페인 이벤트 한다고, 뭐 떠들썩하게 행사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유권자들이 다들 생업에 바쁘다 보니 이런 식의 생활밀착형 선거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대규모 정치유세(랠리)나 TV 토론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TV 토론을 온라인 포스팅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속속 대체하고 있고 대형 캠페인에 직접 참석하는 인원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영 김 후보는 "지역 상공회의소나 비즈니스 모임을 발판으로 삼아 네트워크를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 김은 상대 시스네로스가 지역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지역 거점에 공략 포인트를 잡아 두고 있다. 라헤브라, 요바린다, 로런하이츠에 각각 포스트를 두고 유권자 대면접촉을 늘려왔다.
그는 "그러고 보니 여기 모임 이름이 '캐러밴'이네요'라며 웃었다. 이날 행사명이 브레아 플라센티아 캐러밴이다.
영 김은 중미에서 북상하는 캐러밴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핫이슈가 된 출생 시민권, 지난 6월 미국 사회를 들끓게 한 국경 가족격리 등 여러 이민 이슈에서는 공화당 주류와 다소 궤를 달리한다.
자신을 '자랑스러운 이민자'라고 소개하면서 연쇄 이민 폐지와 무관용 정책에는 공화당 당론과 관계없이 반대한다는 소신을 지키고 있다.
영 김 후보의 리넷 최 보좌관은 "얼마 전 폭스 일레븐(방송)에서 TV 토론도 했다. 여기 이슈는 확실히 교육과 경제, 이런 쪽"이라고 말했다.
행사가 열린 플라센티아는 오렌지카운티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풀러턴의 동쪽에 있다.
하지만 이날 모임에 한인들의 모습은 없었다.
한인이 아무리 많이 산다고 해도 선거구 전체 유권자를 다 합쳐도 1만~2만 명 수준이다.
김창준 전 의원 이후 20년 만에 한인 또는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한인의 힘도 필요하지만, 대다수 유권자를 차지하는 백인, 히스패닉, 흑인,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여야 한다.
핼러윈이라서 그런지, 중간선거를 불과 닷새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행사장에는 축제 분위기도 물씬 묻어났다.
마이크를 잡은 한 행사 참석자가 "자원하실 분 없어요"라고 묻더니 한 사람을 무대로 불러낸다.
그리고는 최면을 걸듯이 눈을 감게 하고는 깊게 심호흡을 여러 번 반복해서 시킨다.
알고 보니, 부동산 중개인이면서 심리학자인 한 지역 상공인이 나와서 독특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한 행사 참석자는 "여기 어디 치과에 가면, 얼마나 싸게 임플란트를 할 수 있고, 보험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같은 깨알 정보를 시장 업데이트 모임에서 나눈다"면서 "시끄러운 정치유세보다 이런 소소한 모임에서 진짜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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