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학자가 쓴 '면화의 제국'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기온이 10도를 넘고 비가 내리는 곳에서 생육한다. 고랑에 1m 간격으로 씨를 뿌리고 흙으로 덮어주면 160∼200일 뒤에 다 자란다.
면화의 생물학적 특징이다. 식물학자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면화는 개화기를 당기거나 미루거나 아예 개화를 멈춤으로써 환경에 적응한다. 날씨가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지 않으면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사와 자본주의 역사,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스벤 베커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쓴 신간 '면화의 제국'은 보송보송한 흰 섬유인 면화가 근대에 생산되고 거래된 양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면화에 주목한 이유는 명료하다. 1000년부터 190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제조업이 면직물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900년에는 세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수백만 명의 남성, 여성, 어린이가 면화를 재배하거나 운반하고 직물을 생산했다"고 강조한다.
면직물산업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돈이다. 유럽인들은 값싼 노동력을 동원해 대규모로 면화를 재배하고 공장에서 직물을 짜서 팔았다. 지금도 중국, 인도, 미국, 서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는 면화 플랜테이션 농장이 분포한다.
저자는 면직물 생산과 소비에서 부차적인 지역이었던 유럽이 면화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구축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유럽의 일부 자본가가 배를 불리는 사이에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에서는 많은 노동자가 폭압과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18세기 후반 면산업을 주도한 영국에서 면화가 전혀 생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유럽 자산가들은 네트워크와 군사력, 자금력만으로 면화 생산과 유통 과정을 좌우했다.
면화와 제국주의 사이의 상관관계는 1900년 전후 한반도 상황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에 면화 생산 증대를 위한 권고 사항을 정리해 제출했고, 일본 방적업자들은 한국에 지점을 설립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간 면화 양은 1904∼1908년에 연평균 1천678만㎏이었으나, 1916∼1920년에는 네 배가 넘는 7천484만㎏에 달했다.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면화단지 확대에 관심이 매우 컸다.
저자는 각지에서 면화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추적한 뒤 산업혁명에 따른 자본주의에 앞서 면화가 중심이 된 자본주의인 '전쟁자본주의'가 존재했다고 역설한다. 전쟁자본주의는 노예제, 원주민 약탈, 제국 팽창, 무력을 동원한 교역, 사람과 토지를 장악한 기업가로 운영되는 체제다.
그는 "전쟁자본주의는 16세기에 발전하기 시작해 기계와 공장보다 먼저 등장했다"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토지와 노동의 폭력적 약탈로 일군 엄청난 부와 새로운 지식으로 유럽 제도가 강화하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비판한다.
즉 자본주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인 공장, 산업, 임금은 모두 후대에 창조된 낭만적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글로벌 산업에서는 문명과 야만이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며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 대륙을 연결한 면화는 근대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불평등과 세계화의 오랜 역사,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 정치경제를 파악하는 열쇠"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면화에 대한 유럽의 지배가 끝난 것을 보면 어떤 상태의 자본주의도 영속적이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며 "힘없는 구성원들이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벌인 노력이 극적인 변화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휴머니스트. 김지혜 옮김. 848쪽. 4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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