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은하 흡수하면서 데려온 '의붓 별' 산재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는 약 100억년 전 다른 대형 은하를 흡수하면서 지금처럼 커지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의 천문학자 아미나 헬미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유럽우주국(ESA)의 가이아(Gaia) 관측 위성이 확보한 자료를 통해 100억년 전 충돌한 다른 은하의 별과 물질이 우리 은하에 남아있는 확실한 증거들을 발견했다고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최신호에 밝혔다.
가이아 위성은 반복적 관측을 통해 별의 정확한 위치와 움직임, 밝기 변화 등에 관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약 17억개에 달하는 별의 3D 지도를 만들어 놓고 있다.
연구팀은 지난 4월 공개된 2차 자료를 통해 약 3만개의 별이 우리 은하에서 만들어진 태양을 비롯한 수천억개의 별과는 다른 방향으로 길쭉한 궤도를 그리며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이 별들은 우리 은하에 흡수되면서 원반부 밖의 공 모양 영역인 '헤일로(halo)'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원반부 물질도 크게 늘려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별들은 별의 밝기와 색을 비교하는데 이용되는 '헤르츠프렁-러셀 다이어그램'에서도 우리 은하에서 생성된 별 무리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헬미 박사는 가이아 위성의 관측 결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두 개의 대형 은하가 충돌할 때 별이 어떻게 되는지를 분석한 이전 연구결과와도 일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별의 화학적 성분을 비교해 추가 증거도 확보했다.
별은 태어난 은하에 따라 독특한 화학 성분을 갖는데, 이 별들은 우리 은하에 태어난 별과 분명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비슷한 성분을 가져 생성된 곳이 같다는 점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우리 은하 속에 별을 남기고 소멸한 은하의 이름을 '가이아-엔켈라두스'라고 지었다. 그리스 신화 나오는 지구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 엔켈라두스에서 따왔다.
엔켈라두스가 에트나 산에 묻혀 지진을 유발하는 것처럼 가이아-엔켈라두스가 우리 은하에 흡수된 뒤 우리 은하에 격변을 일으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구팀은 수백만개의 별이 서로의 중력에 묶여 함께 움직이는 구상성단(球狀星團·globular cluster) 13개가 가이아-엔켈라두스에서 온 별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는 것도 출생지가 같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팀은 가이아-엔켈라두스 은하의 크기가 우리 은하의 위성은하인 대·소마젤란은하와 비슷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는 현재 우리 은하의 10분의 1 정도다. 그러나 우리 은하가 가이아-엔켈라두스 은하를 흡수해 덩치가 커진 점을 고려하면 충돌 당시의 크기는 대략 4대1 정도가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빅뱅으로 우주가 생성되고 약 38억년 뒤인 100억년 전에 우리 은하가 가이아-엔켈라두스 은하와 충돌하면서 살아남아 지금처럼 대형 은하가 됐다는 점을 구체적 증거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리 은하가 주변의 작은 성단을 수없이 흡수해 몸집이 커졌는지, 아니면 단 한 차례의 대형 은하 흡수에 그쳤는지를 놓고 추측만으로 갑론을박이 이어졌는데 이제 구체적 증거로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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