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사건 재판장, 연일 검찰 비판하며 "죄 안 된다" 주장하다 역풍
"사법농단 수사 비판, 판사 직무윤리 위반"…내부서 비판 이어져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을 전후해 고위 법관들이 검찰 수사를 비판하고 나서자 법원 일각에선 '직무윤리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를 두고 의견 대립을 보여온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고위 법관과 소장 판사 진영의 내부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한 법원 직원은 "고위 법관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았느냐"고 일침을 놨다. 30년 안팎 판사 생활을 한 고법부장들이 사법부 수사가 시작되자 '국민의 인권과 법익 침해' 등을 언급하며 검찰 수사관행을 문제삼고 있지만 진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관하여 법원 가족들께 드리는 글(2)'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검찰이 피의사실과 관련 없는 이메일 자료를 '별건 압수'했다고 주장했다가 법원 내부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가 나오자 답변에 나선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지난달 29일 검찰이 법원 전체 직원의 이메일을 대상으로 추출한 자료 가운데 자신과 주고받은 이메일 14건을 압수한 데 대해 "해당 법원 직원들에게 참관할 기회를 고지하는 등 절차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으므로 그 자체로 압수수색은 위법하다"는 논리를 폈다.
검찰이 하나의 영장으로 지난달 11일과 29일 두 차례 압수수색을 한 데 대해서도 "유효기간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집행을 허용한다면 사생활의 평온을 침해당하는 상대방의 불이익이 너무 커질 우려가 있다"는 학계 의견을 동원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3만708자 분량의 글 가운데 절반가량을 자신이 사법농단과 무관하다고 해명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장을 맡은 2015~2016년 법원행정처 등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심리를 편파적으로 진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그는 "(원세훈 재판과 관련한 법원행정처 문건의) 작성자, 작성 경위, 구체적인 내용 등을 전혀 알지 못했다. 문건 작성행위가 저의 업무에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과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글에 적었다. 법원행정처의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게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김 부장판사가 검찰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은 데 이어 "죄가 안 된다"는 판단까지 공개적으로 내놓자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판사는 익명으로 코트넷에 글을 올려 "(김 부장판사의) 글 대부분이 자기가 위법한 짓을 안 했고 자기 사건과 관련해 행정처의 직권남용이 없다는 사실관계 및 법리 다툼인데,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참고인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사안을 이렇게 장외에서 판사들을 상대로 죄가 아니라고 토로하는 것은 직무윤리 위반이 아닌지 심각하게 의문"이라고 적었다.
"영장에 기재된 수색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한 박노수 전주지법 남원지원장도 이날 내부망을 통해 김 부장판사의 '위법수사' 주장을 반박했다.
박 지원장은 압수수색 대상이 '김시철 명의 계정의 이메일 자료'와 '법원 전직원의 코트넷 이메일 자료(대법원 전체 이메일 백업 데이터)'라는 김 부장판사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두 차례 영장 집행이 동일한 장소에 대한 수색이 아니므로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박 지원장은 직권남용 혐의에 관한 이날 김 부장판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사안의 관련자가 수사절차 외에 있는 법원 구성원들을 상대로, 해당 사안의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일방의 주장을 미리 전달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매우 부적절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 법원 직원은 내부망에 "본인이 당사자인 사건에, 그것도 법관이 이런 글을 마치 제삼자들을 위해서 쓰는 것처럼 해봐야 할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썼다.
이어 "저도 수많은 고소, 고발 건을 겪으면서 수사기관을 밥 먹듯이 드나들고 감사계를 출근 도장 찍듯이 방문했지만 제 개인적인 일은 수사기관이나 재판을 통해서 정식으로 해결하려고 했지 이런 방식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직원은 "판사는 판결로 말을 한다 들었다. 이 땅의 고위 법관들이 언제부터 이리 말이 많았는지 모르겠다"며 "가인 김병로께서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말씀하셨듯이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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