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출신 한국 거주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 에세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는 이 기분이 너무도 끔찍하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면, 어떨 땐, 납으로 된 옷을 입은 것만큼 무겁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콜롬비아에 살았을 때 그토록 바라던 것이다. 반대편 땅의 끝에 존재하는 것. 주름 속에 존재하는 것. 타인이 된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촉망받던 젊은 소설가가 30년 넘게 산 터전을 등지고 지구 반대편, 아직 분단 상태인 낯선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흔히 택하는 삶의 경로가 아니지만, 이 소설가는 자기 존재를 철저히 고립할 삶의 조건을 택해 그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한국에서 5년째 사는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41)의 에세이 '한국에 삽니다'(은행나무 펴냄) 이야기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는 장편소설 '나를 구해줘, 조 루이스'와 '쿠에르보 형제들' 등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으며 2010년 저명한 영국 문학 잡지 '그랜타'에서 뽑은 '스페인어권 최고의 젊은 작가 22인'에 들기도 했다.
그는 운명처럼 한국 여성을 만나 결혼했고, 2013년 한국에 정착해 서울 이태원에서 살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문학번역아카데미에서 스페인어 번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수로 일한다.
눈 쌓인 겨울, 서울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로 한 것 외에는 모든 게 미정인 상태로 이태원의 낡은 연립주택을 빌리기 위해 짐을 길바닥에 내려놓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후 1년여 시간 동안 네 개 여행 가방은 5t 트럭 분량의 짐으로 불어난다. 그동안 그는 남대문에서 60년대 한국 록그룹의 LP판을 사고, 황학동에서 중고 냉장고를 샀으며, 좋아하는 음악이 계속 흐르는 술집을 발견하고, 바닥난 통장 잔고를 채우고 또 비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이 책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좌충우돌 체험기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상황들 속에서 느끼는 단상이 책을 가득 채운다. 특히 이방인, 경계인만이 느끼는 고독과 성찰, 삶에 대한 깨달음이 빛난다.
모국에서처럼 볼을 맞대고 입을 맞추는 작별 인사도, 시끌벅적한 음악과 연기에 몽롱한 하우스 파티도, 탄생과 죽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문화도 없지만, 한국에서의 고독한 삶은 그가 그토록 원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에 가까운 상태, 죽지 않고 부활하는 "사라졌다가 되돌아오는 삶"이라고 그는 말한다. 오랫동안 주변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모국으로부터 거리를 두기가 두렵지만 동시에 거대한 평온을 안겨준다.
"가끔은 버스에서 내 옆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혹은 광고판에서 무슨 상품을 팔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의 평온한 기쁨에 휩싸이곤 한다. 서울은 명상을 위한 넓은 들판 같아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듣기 위해서 노력하고, 36년을 산 내가 이 땅 위에서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알아내기 위해서 고민한다." (104∼105쪽)
책 원제는 '흔들리는 외줄 위에서 써 내려간 메모들'(Corea: apuntes desde la cuerda floja)이란 뜻이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출렁이며 줄을 타는 것처럼 존재가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태에서 쓴 글이라는 뜻이다.
소설가 김인숙은 추천사로 "낯선 곳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내부, 타인의 내부를 통해 바라보는 나와 우리들의 외부, 이 책은 그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썼다.
이 책은 2016년 콜롬비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콜롬비아 소설문학상'을 받았다. 아내 이수정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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